닉, 우리의 길티 플레져가 돌아왔어요: 애실리 티스데일 복귀 앨범 로빈 굿펠로우의 전언



애실리 티스데일의 음악가로서 입지는 사실 별 건 없죠.
그냥 평범한 디즈니 걸의 음반질이었을 뿐이에요.
데뷔 앨범은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고,
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눈에 섀도를 떡칠하며 새로운 이미지로 내놓은 소포모어 역시
딱히 새로운 것도, 세련된 것도, 날카로운 것도 없는 그냥 디즈니 걸 팝이었어요.
(혹은 좀 더 정확히는: 애실리 심슨/브리트니 스피어스/켈리 클락슨 워너비 팝이었어요.)

아니요, 애실리 티스데일 세대의 '디즈니 걸 팝'은 요즘의 것처럼 세련되지 않았어요.
사브리나 카펜터나 이런 요즘 꼬맹이들이 하는 프로덕션 밸류 빵빵한 노래를 생각하면 안 돼요.
물론 사브리나 카펜터는 요즘 디즈니 걸치고도 급이 너댓급 높긴 하지만, 어쨌든요.

어쨌든, 이 낡고 엉성하고 무뎠던 소포모어 앨범은,
놀랍게도, 스티브 얼리와인과 닉 리바인,
그리고 나와 엔테, 캐런 시슬리 같은 몇몇 평론가들에게 기묘한 어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큰 어필은, 바로 그 소포모어 앨범의 너무나도 적확한 제목: 길티 플레져였죠.

무엇이 길티 플레져를 길티 플레져 답게 만드는가라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난감한 편이죠.
길티 부분은 쉬워요. 낡고 엉성하고 무디고 멍청하고....
어디가서 이거 내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하기 주저하게 만드는 속성이라면 그게 뭔지 누구나 집어낼 수 있죠.
하지만 플레져 부분이 어렵습니다.
이게 대체 왜 내 마음에 드는 거지?

애실리 티스데일의 소포모어 앨범은,
숱한 평론가들에게 그 질문을 던지게 하는데 성공한 길티 플레져였습니다.
닉 리바인은 "이 냔은 심지어 A급 상품도 아닌 베로니카스를 베낀 거야?"라면서도
이게 자신의 길티 플레져라는 걸 선선히 인정했고,
스티브 얼리와인은 심지어 이 따위 남이 해놓은 것 받아쓰기에 별셋반을 주는 만행을 저질렀죠.
(물론 뭐 오십보 백보로 5+1.2점 준 내가 할 말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난 켈리 클락슨을 싫어해요.
그런데 왜 이 켈리 클락슨의 rip off인 It's Alright, It's OK는 마음에 드는 거죠?
설마 난 켈리 클락슨은 너무 잘해서 싫어했던 건가? 그럴 리가?


그리고 이해가 안 돼서 이제와서 찾아보니,
확실히 애실리 티스데일이 켈리 클락슨보다 잘하긴 잘했네요.
그냥 전체적으로 수행능력이 좋아요.
켈리 클락슨은 저 빼어난 보컬 스탯을 엉뚱한데 꼬라박은 반면,
애실리 티스데일은 저 엉성한 보컬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 욱여 넣고 있죠.
일단 기악 구성이 한급 높은 건 이미 남의 답안을 보고 베끼는 쪽엔
당연히 붙어야하는 개선이니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어쨌든, 이게 왜인지는 모르겠고, 그게 중요하지도 않지만...
애실리 티스데일의 소포모어는 나와 몇몇 평론가들의 길티 플레져가 되는데 성공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디즈니 걸의 음악가 인생에는 사형선고가 되었습니다.
애실리 티스데일은 '과감한 이미지 변신'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호평이 "제목 하나는 잘 골랐네"하는 조롱인 현실에 그냥 연기와 결혼생활...보다는
옷 장사와 화장품 장사에 전념하는 길을 택했고, (사실 뭘로 먹고 살았는지 잘 몰라요. 일단 연기는 아니니까요.)
10년간 이 업계를 떠나 있었죠.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어선지는 모르겠지만,
2016년 말 부터였나?
유튜브 채널에 커버 영상 따위를 올리며 툭툭 복귀 의사를 타진해왔어요.
솔직히 이해는 안 됐죠. 굳이?

작년 프라임 시즌에 내놓겠다던 앨범은 소리 소문 없이 출시가 미뤄졌지만...
뭐, 신경도 안 썼어요.
오늘에서야 이 앨범을 사우론의 눈에서 발견하고서 '이거 작년 프라임 시즌에 낸다고 하지 않았나?' 했죠.
(올해 초에 싱글 뮤직비디오들 나오는 거 보면서 이미 앨범 낸 줄 알고 넘어가기도 했군요-_-)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그네스 밀레프스키 새 EP 바로 다음으로,
그러니까 이번 주에 나온 앨범들 중 두 번째로...
난 이 앨범을 걸어놓고 있더군요.
언뜻 듣기에 괜찮게 뽑아온 듯한 루비 필즈 새 EP보다도,
자그마치 대도의 새 앨범보다도
(물론 이건 싱글들이 눈에 안 차서-_-이긴 하지만... 그래도, 7점은 보장인 듯 깔아줄 대도인데?)
이걸 먼저 듣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놀랍게도,
애실리 티스데일은 그 기대(?)를 완벽하게 보상해줍니다.
10년 전과 똑같은 길티 플레져를 만들어왔어요.
아니, 그러니까,
10년간 성장했죠.
그리고 이 업계도 그 10년간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앞서 사브리나 카펜터를 언급했던 이유도,
단순히 같은 디즈니걸의 예시라서가 아니라,
이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Symptoms가 정확하게 사브리나 카펜터의 rip off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건 좀 놀랄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내 마음에 들어요.


어려운 질문은 던지지 말도록 하죠.
이게 왜 내 마음에 드는지 이것저것 재보지는 않을 거예요.
사실, 여기엔 그걸 고민하고 따져봐야할 가치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니까요.

이건 WfGA 빗나간 융단폭격의 후보에도 올라가지 않을 겁니다.
난 결코 이게 내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을 빗나간 융단폭격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사브리나 카펜터도 엄밀히 말하면 길티 플레져의 영역에 있는 꼬맹이인데,
14년이나 더 살고도 그 꼬맹이나 베끼고 자빠진 이 아줌마를 칭찬해 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사실,
길티 플레져라면 모름지기 그래야하는 법이죠.
5년쯤 지나서라면 모를까 바로 그 시점에 '이건 사실 내 길티 플레져인데'라고 떳떳히 밝힐 수 있는 건
절대로 길티 플레져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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