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내 말이, 너야말로 누구세요?: 매디슨 커닝햄 소포모어 앨범 로빈 굿펠로우의 전언




매디슨 커닝햄이 데뷔 앨범을 내놓던 2014년으로 돌아가보죠.
OQOP와 TP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던 난,
"대체 90년대생 유망주는 다들 어디 있는 거야!?"를 염불처럼 외우고 다녔습니다.
92년생인 프리다 아믄센과 레베카 로벨에 근접이라도 하는 90년대생이 하나도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죠.

그리고 97년생인 매디슨 커닝햄은 그 내 원망의 대상이었던
'90년대생 유망주 후보'에도 들지 못한 쩌리 중의 상쩌리 기독교 계통 포크 가수였죠.
(그땐 97년생인지도 몰랐어요.)
난 이 아가씨의 데뷔 앨범을 사지도 않았고,
어느 편집자에게 받은 리뷰어카피를 한 번 듣고는 (캐런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누구지?)
"이딴 걸 듣는데 낭비한 내 인생의 50분은 누구에게서 돌려받아야 하나?"라고 말했어요.
지나치게 평탄한 고전 포크를, 그나마 매력적이지도 않은 멜로디와 창법으로 읊어 대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앨범이었죠.

그리고 TP가 궤도에 오르면서 이 별볼일 없는 데뷔 앨범을 내놓은 10대 꼬꼬마를 영원히 잊어버렸죠.

그러던 올해 6월 말이었죠.

당싱도 두 달 전에 나온 이 노래를 그제야 유튜브 추천영상에서 처음 발견한 난,
TP에 이 노래를 '핀 업'해두긴 했지만, 대단히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기반의 신인 가수네?'라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요즘 흔한 베이스 드리븐 팝락 트랙을 흉내내면서 고전 포크의 힌트를 조금 빌려온,
그런 신인 꼬꼬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TP 정리를 하면서 음악가 정보를 찾다보니,
뭔가 이상한 게 하나씩 보이고, 저 데뷔 앨범을 다시 들어보니,
어라? 이건 내가 들어본 앨범이란 걸 깨달은 거죠.
그리고 그제야, 저 노래가 '베이스 드리븐 팝락 트랙을 흉내내면서 고전 포크의 힌트를 조금 빌려온' 노래가 아니라,
고전 포크에 영혼이 함몰된 꼬꼬마가 베이스 드리븐 팝락 트랙을 흉내내면서
자기 노래를 팔 방향을 모색하는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소포모어 앨범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전 포크에 영혼이 함몰된 꼬꼬마가 베이스 드리븐 팝락 트랙을 흉내내면서
자기 노래를 팔 방향을 모색하는 노래' 역시도, 뭐 그리 대단한 기대를 해주기는 힘든 물건이잖아요.
"그래, 나름 방향 잘 잡았네"하고 넘겼죠.
TP에서 상당한 윗 자리를 갈라 주긴 했지만, 그게 정말로 기대가 되어서라기보다는,
'스타일 잘 바꿨네.' 정도의 의미가 더 컸어요.

저 노래를 TP에 올려놓고 구매한 올해 EP에 대한 평을 보면,
"매디슨 커닝햄은 언제나 상상력에 비해서 수행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EP는 이후에 내놓은 싱글이 그 부족했던 수행능력을 갖췄으니 원 업."이라고 해놨군요.
네, 딱 저런 느낌이었어요. 가까스로 나쁘지 않은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행능력을,
처음으로 채워준 트랙이 저 Pin It Down이었죠.

그리고는 이 앨범을 받아 들었습니다.
그리곤 4-5-6번 트랙 Trouble Found Me - Plain Letters - L. A.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죠.


사실 앨범 나오기 2주전 발표된, 앨범 싱글인 이 노래를,
그 존재조차 몰랐다는데서 내가 얼마나 이 아가씨에 대해 기대를 성기게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죠.
아마... EoS에서 봤을 거예요. 그런데 그냥 안 듣고 훑어 넘겼죠.
(뭐, 그 전에 내놓은 별 볼 일 없는 싱글 Something to Believe In이 가장 큰 영향을 줬을 것 같긴 하지만,
살짝 무시하자고요.)





매디슨 커닝햄은 이 3 트랙의 연계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음악가로 거듭났는지를 정말로 효과적으로 알려주고 있어요.
루트 포크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여전히 거기에 영혼에 묶여 있지만,
어떤 악기를 어떻게 활용해서 그 퇴색된 창연함에 새로운 활력을 담아낼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죠.
특히 L. A.는 내가 로라 말링에게 잠깐 기대해봤던 노래인데,
이렇게 엉뚱한 데서 완성품을 보게 되니 참 당황스럽네요.

음, 이 아가씨와 로라 말링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해야할 것도 같지만, 접어두죠.
세 문단 정도 쓰다 지웠는데, 아무래도 이 간이 리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에요.


이 Common Language의 앞부분에 들어간 회전체 공명 소음과
그 효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봐야할 것 같은데,
솔직히 저거 세 문단 지우고 나니까 별로 내키지가 않아요.
그냥 저 앞부분 40초에 들어간, 일종의 팬 소음을 새겨 들어보라는 정도 밑줄 그어두고 넘어가죠.


매디슨 커닝햄은 정말 놀라운 앨범을 만들어왔어요.
난 이 앨범 평점을 8+0.9와 9+0.3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죠.
StBI를 3번에 박아둔 게 너무나 거슬리기에 결국 9점은 못 준다는 결론이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이건 데뷔 앨범과 올해초에 내놓은 EP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과죠.

재미있는 건, 내게 즉각적 실망을 안겨줬던 올해 EP는,
사실 이 앨범을 만들면서 생긴 부산물로 만든 B사이드 트랙들이었다는 거예요.
Plain Letters나 Song in My Head 같은 경우에는 이미 작년 중반에 완성된 트랙인데
저 EP에 수록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 사실, 이건 저 시점에 매디슨 커닝햄의 앨범에 대한 개념은 완성되어 있었다는 근거죠.

로라 말링과의 비교에서 날려버린 몇몇 구체적인 언급들이 사라지고 나니
뭔가 내용은 다 빠진 간이 리뷰가 되었지만, 이만 접을래요.
간이인데 뭐 어때요?
사실 애초에 rgf카드 만드려고 쓴 거임. :)

덧글

  • 2019/08/17 22:40 # 삭제 답글

    저 3번은 그냥 기존 팬들에게 "안심해요, 어디 가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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