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왜 이렇게 불편한 거죠?: 에마 라몽타인 데뷔 앨범 로빈 굿펠로우의 전언




에마 라몽타인은 한 번도 내게 기대주인 적이 없었죠.
이 2000년생 꼬맹이가 만드는 노래는 항상 뭔가 어색하고 기분이 나빴어요.
거기다 저 프랑스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읽는 캐나다인 꼬꼬마의 엉터리 발음은 확실히 날 과격하게 자극했죠.

지난 6월에 내놓은 두번째 싱글 Love Games가 TP에 올라가긴 했지만,
흔쾌히 기뻐하며 이걸 올린 건 아니었어요.
그냥 TP에 올리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완성도가 높아서였지,
'와, 이 꼬맹이가 이렇게 예쁜 노래를 뽑았네!'하며 올린 게 아니었죠.


이 기묘하게 날 콕콕 찌르는 불편함이 뭔지는 도대체 알 길이 없었지만,
10월초에 앨범 싱글인 The Art of Reality가 나왔을 때서야, 뭔가 살짝 감이 잡혔어요.

난 이 노래를 이끌고 나가는 저 뭔지 모를 탁한 유음 타악기가 너무 너무 싫어요.
느리게 질질 끄는, 맑지 못하고 접힌 잔음 처리도 마음에 안 들어요.
이런 노래에 중간중간 버퍼 전환 틱으로 노래를 씹어놓는 건 혐오스러워요.
저런 소리를 이런 노래에 붙여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래서는 노래의 균형이 무너져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무너진다고요'가 아니라, '무너져야 한다고요'라는 게,
날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던 거죠.
난 절대로 저 소리가 이 노래의 균형을 맞춰낸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데,
거기 성공하고 있다고요.
이게 왜 되는지, 대체 이 내가 진절머리 내며 싫어해야 마땅한 노래가 왜 내 마음에 드는지,
결코 알 수가 없다는 게 이 불편함의 근원이었죠.

그리고는, 지난 주 받아든 이 앨범은, 그 황당함과 불편함의 공명을 더 키워놨죠.

좋아요, 일단 인정할 것부터 인정하고 넘어갑시다.
Eulogy at a Funeral은 그냥 이런저런 사설 붙일 필요 없이 잘 만든 노래예요.
이건 올 하반기 내 베스트 트랙이고,
그냥 저 베이스라인과 에마의 두터운 보컬, 하이햇의 조합은
정석을 그대로 꿰뚫으면서도 신선한, 정말 훌륭한 답안이에요.
그래요, 난 이게 왜 잘 만든 노래인지, 왜 내 마음에 드는지 설명할 수 있어요.
앞으로 두 문단이고 세 문단이고 이 노래를 찬양할 수도 있죠.


Where Do I Go from Here은 아주 정석적으로 뽑은 팩업 트랙이에요.
이게 8번에서 이 9트랙 앨범을 닫을 준비를 해주는 건,
말 그대로 정답에 가까운 답안이고, 난 이게 왜 이 자리에서 저 엷게 퇴색된 빛을 '발하는지' 논할 수 있어요.


Love Games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예쁘게 잘 뽑힌 트랙이죠.

그런데 말이에요.
아니, 아니, 일단 좀 더 이해가 가는쪽부터 언급하고 넘어가죠.

The Best That I Can은 훌륭한 7번트랙이에요. (이 9트랙 앨범에서는 6번이지만, 내 14트랙 구성에서 7번 말이에요.)
그런데, 난 이 노래가 왜 중심 드럼 라인 없이 진행될 수 있는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피아노가 퍼커션 역할을 하고 있죠.
콰이어에 필요할 때는 한 박씩 드럼 때려주고 있고요.
내 말은, 저 2분께에 햇 때리고 빠르게 가사를 쏟아내는 브릿지에서,
저게 대체 어떻게 저런 옅은 타악을 가지고 노래가 만들어지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요.

반면 마지막 트랙인 Jinx는 멜로디와 아예 따로 노는 드럼라인을 가지고 출발해서
끝까지 저 탑코트에서 타다닥거리며 튀어다니는 드럼을 유지하죠.

그러니까, 저 멀뚱하게 혼자 노는 드럼라인이 있는데,
왜 이 노래로 앨범이 끝나는 거죠?
어떻게 이 노래로 앨범이 끝날 수 있는 거죠?
아니 그러니까, 못 끝나야 하는데 왜 제대로 끝이 맺어지냐고요.

그래요, 이것들까지는 그럴 수 있어요.
저 징크스에서 퍼커션 확 죽이며 끝맺는 기교,
그게 어떤 기교인지, 어떻게 그걸로 끝이 맺어지는지, 쉽게 이해는 안 되지만
대충 감은 잡을 수 있다고요.

근데 이건 뭐냐고요




이 거지발싸개 같은 기악 구성은 뭐고,
저 아무 열의도 느껴지지 않는, 그냥 있는대로 갖다 읆기만하는 엉성한 가창은 뭐고,
저 만들다 만 멜로디는 뭐고...

근데 왜 노래가 되냐고요?
아니 안 돼야 맞잖아요.
노래 비슷한 것도 안 만들어져야 맞잖아요.

내가 왜 이렇게 막 그냥 멋대로 찍찍 그어 낸 것 같은 앨범에 9+ 포인트를 줘야하냐고요?

그러니까,
이게 2000년에 데뷔한,
20년차 중견가수 앨범이라면,
이렇게 이해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2000년생이?
아니 2000년생이라도 밀리 터너처럼 몇년간 꾸준히 활동하며
그 성장과정을 제대로 보여준 아이라면 모르죠.
그런데 이 꼬맹이는 커버나 작은 라이브 작업들을 제외하면
2017년에 내놓은 노래 같잖은 데뷔싱글 하나가 이전 커리어의 전부라고요.

유치원생이 그린 입체주의 회화를 높이 평가할 수 있어요?
바로 거기서 이 불편함이 기인하는 거죠.
이건 유치원생이 그린 큐비즘이에요.
그런데 엘리트 미술 교육을 받은 중학생쯤이 남의 그림을 세심히 베껴 냈을 때나 나오는 우아함이 엿보이는 거죠.

보통 이런 상황의 답은 "부모님이 그려줬구나"이죠.
글쎄요, 이건 어떨까요? 난 모르겠어요.
게다가 저 '2017년에 내놓은 노래 같잖은 데뷔싱글'이,
이 앨범에 담긴 노래들의 주춧돌이라는 게 빤히 보이는 상황에
느그 부모님 그림 잘그리시냐고 묻기는 마땅찮죠.

그리고 이런 시선을 뻔히 예상한다는 듯한 저 앨범 제목: 불편한 눈 마주침이 날 조롱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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