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애덤 커너버가 영어에 00년대와 10년대를 지칭하는 말이 없다는 이유로
21세기의 문화 지체 현상을 설명하는 영상을 보고…
한참을 저게 뭔 개소리야 하는 생각을 했다.
응. 딱 잘라 말할 수 있어.
저 말은 틀렸어.
한국어에는 00년대와 10년대를 지칭하는 말이 있고, 실제로 쓰였지만,
문화 지체 현상은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강하게 형성됐거든.
한국의 문화 지체 현상의 원인은 간단해.
소비층의 노령화.
창작자의 노령화.
레거시 미디어의 권력 해체로 인한 시장 선도 압력의 소멸 정도를 생각할 수 있지.
그런데 저 얘기를 듣다보니까,
기존의 앞쪽의 사회 노령화에 무게를 두던 해석도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쪽이 훨씬 영향이 커.
예전에는 TV에는 항상 새로운 걸 올려야 했어.
원래 하던 건 남들이 다 하니까
새로운 걸 찾아서 10대 20대를 공략해야만
그 10대 20대가 채널 돌리는 게 귀찮아서 한 방송국을 계속 틀어놓는 50대가 될 때까지
이 방송국의 먹거리를 책임져 주는 거지.
그래서 90년대까지는 방송국이, 잡지가,
새로운 거, 더 정확히는 앞으로 팔릴 거 찾아서 올리려고 노력했어.
너희 독자들도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따라와,
못 따라오는 촌스러운 애들은 버리고 갈 거야.
하면 촌스럽게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독자들도 우르르 따라왔으니까.
물론 KBS처럼 남이 시행착오 겪으며 찾아 놓으면
그거 따라가면서 이삭줍기만 전문으로 하는 병신들도 있었지만,
어쩄든 그랬다고.
근데 이제는? 레거시 미디어의 독점 권력이 해체 된 지금은?
새로운 거 하면 판매량 반토막 나고 망하지.
한국에서 문화 지체 현상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사회 노령화보다는 기존 문화 체계가 훨씬 더 레거시 미디어에 의존하는
일원적 체계였기 때문인 거지.
다른 나라에 비해 방송국이 멱살 잡고 앞으로 끌고 가는 경향이 강했는데,
그 영향력이 사라져 버리니 길잃고 멈춘 자리 맨 땅에 머리 박고 파고 들어가는 양들이 잔뜩인 거야.
응.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기보다,
이게 더 큰 문제인 거 같아.
더 이상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대중을 양떼 몰이를 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매체가 없다.
그러니까 20년이 넘게 변화 없이 정체되고 있는 거지.
99.
근래에 계속 이것저것 숙제를 하느라 바쁜데,
한참 숙제하다보니 정말 의아한 게 생겼다.
그러니까, 그, ‘창고 건축’류의 연재 소설, 만화 얘긴데 말이야.
음, 이게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떻게 독자에 대해 어필을 하는지 그 포인트는 알겠어.
그리고, 빈손에서 첫번째 창고를 올리는 동안은 그 어필을 확실하게 한다는 것도 알겠어.
그래, 그리고는 이게 갈등 구조나 플롯은커녕 스토리도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인포메이션 0의 이야기가 되는 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겠어.
저런 종류의 이야기가 크게 어필하는 독자들이 갈등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는 거야.
새 창고 올리고, 새 창고 올리고, 안 팔릴 것 같으면 창고에 재화 대신 여자를 채워 넣고,
그것조차 안 팔리는 날이 오면 접는 게 최선의 활용이겠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대체,
왜,
저런 창고 건축 놀이가 연재되는 걸 3년이고 4년이고 지켜보는 독자가 있는 거지?
1년은 이해 해. 첫 창고를 완공시키고 거기에 물자를 채워 넣는 건 재미있을 수 있을 거야.
2년도 그런 독자를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런 독자가 있다는 건 이해 해.
하지만 3년?
그걸 어떻게 지켜보지?
이미 창고는 다섯채 쯤 완성 되어 있고,
이제 다른 재화를 채워 넣을 또 다른 창고를 짓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시발 어떻게 지켜보는 거야?
심지어, 돈까지 내면서?
아니 진짜로,
돈까지 내면서?
난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P가 공짜로 던져 준 P네 출판사 출판작을 제외한,
이 장르에서 비교적 인기 있는 편인 장기 연재작 10여종을 사서 읽어 봤는데,
단 한 푼도 아깝지 않은 게 없었어.
10원에 한 편씩을 팔아도 돈 아까울 거야.
숙제라서 시간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가 정말로 저걸 읽으려고 읽었다면 돈에 앞서서 시간이 아까웠을 거야.
아니, 이야기가 아예 똑같이 반복되잖아.
또 창고 짓고 있잖아.
또 창고 채우고 있잖아.
채워 넣는 재화의 종류만 바뀌지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잖아.
아니 정말로 똑같다고, 비슷하다가 아니라 진짜 법적인 표절이 성립할 수준으로 똑같단 말이야.
3권하고 11권하고 재화 종류와 등장인물 면면만 약간 바꾸고 그대로 갖다 붙여도
아무도 이상한 걸 못 느낄 정도로 똑같다고.
아니 당연히, 위기도 없이 차곡차곡 창고를 지어 채우는 이야기니
뭐가 다를 수가 있겠냐만은….
아무리 그래도…
저 정도 됐으면 아, 그만 봐야겠다. 해야하지 않아?
왜 저걸 사서 보는 독자가 있는 거야?
어떻게 그런 독자가 한 명이라도 존재할 수 있는 거야?
내가 대체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정말로 여기에, 돈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100.
결국 예전에(10년전 아닌가?) K가 던져 줬던 나태의 마녀 초안 잡기를 시작했는데,
마법 설정이 생각보다 엄청 어렵다.
일단 지금 초안 내용은…
“네, 9교 중 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명명가들이 쓰는 기술입니다.
만물과 이치에 마땅한 이름을 붙이는 기술이죠.
그 이름을 찾고, 바꾸고, 격을 높이고 떨어트림으로써 대상의 본질조차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유교와 음양교를 전공했기에 그 기술적인 영역은 잘 모릅니다만,
어쨌든 명명가들은 이렇게 바퀴에 ‘돌아가는 바퀴’란 이름을 붙임으로써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바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 그쪽 세계의 종교와는 좀 다릅니다.
저도 정확히 둘을 비교하긴 힘들지만 일단 유교는 조금 익숙하실 겁니다.
그쪽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 세계의 유교는 저 명교처럼 실제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다릅니다.
유생들은 대의를 따름으로써 자신의 덕망을 높일 수 있는데,
이 덕망을 써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특정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자격을 규정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덕망 높은 선비가 침략해 온 장군을 꾸짖자
상대가 부끄러워하며 군사를 물렸다 같은 이야기가
선생님의 세계에서는 동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겠지만,
저희 세계에서는 실제로 가능한 일입니다.
단순히 부끄러워서 군사를 물리는 게 아니라,
군사를 지휘해 침략할 자격이 없어진 거라서
퇴각 말고는 아예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공황 상태가 됩니다.
물론 저 정도 행동에 제약을 주기 위해서는
정말 엄청난 덕망을 쌓아야 하긴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 공황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지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꺼림칙한 게 아니라 정서에 실질적인 타격을 받고,
이러한 자격 없는 행위를 계속 하는 것은
꾸준히 대상의 정신을 갉아먹어 피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당연히, 대의의 흐름을 좇지 못하고 벗어나 버린 유생은 덕망을 잃어 무력해집니다.
그렇기에 대의를 좇아 자신의 덕망을 쌓는 법을 연구하고 익히는 게 유교입니다.”
“그리고 아마, 법교도 법가란 이름으로 어느 정도 익숙하실 겁니다.
다만 역시, 이쪽에선 특별한 힘을 갖습니다.
아마 그쪽의 법가도 세를 두르고 술을 통해
법을 만들어 통치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을텐데, 여기서도 비슷합니다.
이쪽에서 법술이란, 법을 만들어 대상의 행동을 구속하는 겁니다.
유교가 덕망을 통해 상대의 자격을 부여하거나 박탈한다면,
법교는 세와 술을 통해 상대를 법으로 구속합니다.
세라는 건, 권세, 매력, 지성 등, 술자 본인이 갖추고 있는 사람을 지배하는 힘 자체를 말합니다.
술이란 상대를 설득하거나 속이는 화술이나 술책 같은 것을 말하죠.
그래서 법교의 제자들은 자신의 세를 키우고 술을 연마하여
많은 사람한테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그렇게 자신의 세에 끌리고 술에 홀린 사람들을 구속하는 법을 만들어
자기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이들을 늘리려고 합니다.
다만 이 법이라는 건, 선생님 세계에서 쓰는 말로는 계약에 가깝습니다.
법의 술자와 대상 사이에는 어느 정도 동의가 필요하고,
그저 상대를 속여 지배하는 술법은 아닙니다.
물론, 저희 세계에서도 법술을 상대를 속여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해 접근하고
그런식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마녀 역시 법술을 그런식으로 배워 사용하는 이입니다.”
“선생님은 도교라고 하셨는데,
사실 이쪽에는 도교에 해당하는 가르침이 여러 갈래로 쪼개져 있습니다.
음양교……는 유교와 도교에 두루 갈려 있지만, 여기서는 따로 존재합니다.
그쪽 세계에서는 물리학, 언어학, 법학 정도의 영역에 속하는 학문입니다.
단약교는 의학, 생물학, 생리학, 심리학 정도의 영역에 속하는 학문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도교에 해당하는 쪽은 도덕교, 태평교, 태역교의 셋인데,
이 셋은 천연의 상태를 중요시하며 법교, 명교, 유교의 술법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실제로 그 효과를 무효화하는 것도 가능하죠.
셋이 아예 다른 가르침으로 갈려지는 이유는
저 ‘천연의 상태’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 방향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덕교는 법술을 무효화하는 쪽에,
태평교는 명명술을 무효화하는 쪽에,
태역교는 유학을 무효화하는 쪽에 성과를 보입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저는 문외한인지라 정확히는 모릅니다.”
“묵교는 조금 복잡한 게, 그 역사 때문에 9교 중 하나로 꼽히기는 하지만,
이게 실재하는지조차 애매합니다.
묵교는 스승이 직접 제자를 데리고 다니며 입에서 입으로 가르침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 제자들은 은거하거나 떠돌아다니며
스스로 도움이 되는 곳을 찾으며 세상의 균형을 추구합니다.
무술에 능하고, 건축에도 소양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설에 가깝습니다.
묵교의 가르침이란 게 무엇인지도, 사실 정확히는 모릅니다.
선생님의 세계에서 묵가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잘 전해져 오지 않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심합니다.
사실 이 묵교라는 이름 자체가 그쪽 세계의 묵적에서 따온 것이기에,
애초에 묵교는 저희 세계의 가르침이 아니고 그쪽 세계에서 넘어온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묵교에 대한 연구 기반은 대부분
5-60년전의 어느 개영가가 직접 그림자를 열고
그쪽 세계의 묵자 연구 자료를 가져와서
저희 쪽의 묵교와 공통되는 영역을 따로 정리한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저희에겐 완전히 전설 같은 존재이고,
가끔 묵교의 제자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도와주고 떠났다는 사람은 보고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 묵교의 제자가 확인 된 적은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대로 설명을 못 드렸네요.
유학과 법술은 그 본질과 기능이 완전히 다릅니다.
법술이 개인 간의 법, 그러니까 계약을 만드는 거라면,
유학은 거스를 수 없는 대의의 흐름에 따르게 하는 겁니다.
앞에서 얘기한 침략한 장군을 회군시키는 예시에서라면,
만약 법술로 적장을 구속하여 회군을 하게 만든다면,
특별히 다른 제약을 걸지 않는 이상
그 장군은 돌아가서 자기 주군에게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될 겁니다.
하지만 덕망 높은 유생에게 침략할 자격이 없음을 선언 받아 회군했다면,
그 어떤 군왕도 그 장군을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뭐 처벌을 하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걸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천명을 잃고 자리에서 끌어내려질 위험이 큽니다.”
“‘대의를 따른다’는 개념은 그렇게 어떤 고정된 진리가 있고,
그걸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생은 항상 자신의 도덕, 사회의 윤리, 국가의 법을 초월하여
‘진정한 옳음’이 무엇인지 쉬지 않고 고민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정한 옳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대의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유학은 어떤 종류의 우회로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세상 모두를 속여도, 거짓된 주장으로는 그 무엇의 자격이건 논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속여가며 만든 논리로 덕망이 쌓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유생들은 종종 자신의 덕망이 쌓이지 않는 것으로,
자기가 스스로를 속이고 거짓 옳음을 쫓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입니다.
‘진정한 옳음’이 하나는 아닙니다.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접근법이 모두 옳을 수도 있죠.
그래서 유생들끼리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며 싸울 수도 있습니다.
간혹 견문이 좁고 판단이 미숙하여 말도 안 되는 자격을 논하는 유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정당한 논박을 인정하지 않고
설득되지 않은 척 억지를 쓰는 유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태생이 남의 생각에 관심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아예 들은 적이 없는 부류는 있을 수 있어도,
남의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부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의 생각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덕망을 쌓기가 좀 많이 힘든 편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성향으로 엄청난 덕망을 쌓은 유생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사고치고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결코 교정되지 않는 덕망 높은 유생이… 한 명….
아니, 아닙니다.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그냥 이론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대체적으로, 유생들은 믿을만한 사람들입니다.
거짓말을 아예 안 하지야 않겠지만,
거짓말로 상대를 해하려는 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쌓은 덕망을 죄다 버릴 생각이라면, 할 수 있겠지만,
아마 그런 건 정말로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따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상대를 속여서 함정에 빠트려야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면,
속여도 덕망을 잃고, 속이지 않아도 덕망을 잃을 상황일 테니까요.”
이 정도가 마법 설정 관련 인용인데, 법, 유, 특히 유교는 지금 설정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법교는 좀 빈약하긴 하지만, 매력 있는 사람들이 쉽게 빠져들고 악용되는,
쉽게 사도로 흘러 들어가는 술법이라는 속성이 잘 구현 된 것 같아서 좀 보강만 하면 될 것 같아.
문제는 명교인데, 이걸 좀 확실히 정비해야 할 것 같은 게…
일단 당장 영구기관이 가능하단 말이지?
이거 제어 해야하잖아.
간단하게는 명명술의 유지에 계속 자원이 필요하다는 쪽일텐데,
명명술이 약해지는 건, 사람들이 그 의미를 받아 들이지…
아니야. 이거 아니야. 유학이나 법술은 술자 본인의 대의와 법에만 의존하잖아?
갑자기 명명술에 와서는 일반 대중의 명실 파악이 문제되어선 안 돼.
아. 음… 회륜을 수레로만 한정한다면? 이건 되지 않나?
응. 회륜은 오직 수레에 달려서 땅 위를 구르는 것만이 허락된 바퀴야.
저 이름에 정의된 용도가 그것이기에 다른 용도로 바퀴를 굴리는 게 불가능해.
하나의 이름에는, 오직 하나의 용도만이 존재할 수 있어.
아무렇게나 확장하는 건 명명술에선 불가능해.
이거면 막 말도 안 되는 제약도 달아 붙일 수 있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맞아도 달 그림자 세계와 해 그림자 세계의 사고 방식이
그렇게나 다르다고 우기면 돼.
문제는 도교 쪽이다.
아직 설정이 적긴 한데,
도덕(노)/태평(장)/태역(열) 사이에 좀 더 명확한 차이를 둬야 해.
법가 카운터, 명가 카운터, 유가 카운터로만 존재한다면,
저게 존재의 이유가 없잖아.
도덕은 무위, 모든 작위성을 틀어 막아 버리기 때문에
특히 작위성이 강한 법술을 확실히 카운터칠 수 있고,
다른 작위적인 변형들을 무효화 하는 능력이 있을 거야.
화산 폭발, 폭풍, 지진, 해일 같은 대규모 재해도 그 규모를 줄일 수 있다… 정도?
도덕가가 ‘지진을 잠재워 약하게 오래 떨리게 만든 적이 있다’ 정도는
미랄이 알고 전해줄만한 내용이기도 하니 이건 언급하게 해야겠네.
(+ 도덕가가 지진을 ‘예방’하기 위해서 약한 지진을 일으킨다… 같은 게 가능한가?
아니지. 이건 유노적 무위지.
비록 자연적인 것일지라도, 한쪽을 짓눌려 쌓인 에너지가 뒤틀려 풀려 나오면서 생기는
강력한 자연재해를 막아 잠재우는 것은 도덕가답지만,
미리 예방을 한다면… 그 뒤틀림을 풀… 음, 단층의 압력을 풀면 지진 일어나겠네?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안 맞는 것 같지만, 미시적으로 봤을 때는 맞는 얘기였군.
뒤틀린 것을 순리대로 풀어 놓는 것은 무위의 기본 속성이니까.
응. 그래, 도덕가들은 화산, 지진 등을 잠재우고 다니고,
주위에선 저게 뭔 무위여… 하고 의아해하니까 설명하는 이벤트를 넣어야겠네.)
태평은 이것도 저것도 모두 관점의 문제이기에
파라켈수스의 장미 형식의 마법이 필요해.
태평가들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것도 맞는 말 아니겠소?’하면서
농담 따먹기만 하고 다니지만, 그 관점을 바꿔서 실제로 이치를 뒤집어 엎을 수 있는 능력.
하지만 그렇게 뒤집어 엎는 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수 있기에
아무도 쓰지 않는 능력.
태역이 진짜 문제네. 아무 분별도 정오도 없는 도 그 자체인 태역이기에
유교 카운터인 설정인데… 그거 말고 뭘 시킬 수 있지?
열자가 바람 타고 다니는 거야 장자의 장난질이니까
오히려 이건 태평 쪽이고.
아, 얘넨 좀 사이비처럼 그려줘야겠다.
풀뿌리 캐 먹으며 풀뿌리나 진수성찬이나 본질은 태역으로 같으니
진수성찬을 먹는 것과 다름 없는 행복을 느끼는 미친놈들로 그리는 거.
아. 이 그림 마음에 드는데?
막 바늘판 위에서도 침대 위처럼 편안하겠네? 하고 바늘 판 위에 눕게 하는데,
실제로 바늘이 피부를 파고 들지 못하고 편안하게 눕는 거 같은 거.
그냥 항우울제 맞은 사이비 교도처럼 굴다가 갑자기 그런 물리적인 영향력을 보여주는 그림 좋다.
물 위도 걸을 수 있나?
음, 정말 대단한 태역가라면, 물 위가 아니라 허공도 걸을 수 있지.
(+ 이게 장자의 바람 타고 허공을 떠 다니는 열자 조롱과도 결이 맞는 게,
딱 태평가들이 태역가들한테 ‘그렇다면 허공도 걸을 수 있어야지’하고 조롱할만한 내용이잖아.)
이거 좋다. 그런 경지에 오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서
대부분의 태역가들은 그냥 고행을 감내하며
어차피 본질은 같기 때문에 자기는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멍청이들인데,
진짜 대단한 경지에 오른 태역가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거야.
도덕은 고점이 재액을 막아내고 아이들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고,
태평은 높이 올라갈 수록 도술 사용 자체를 무의미하게 여기기에,
그걸 무의미하게 여겨야만 높이 올라갈 수 있기에 고점이 아무 의미가 없지만,
태역은 그냥 미친 신선 놀음이 가능한 수준으로 고점은 높은 대신
아무도 그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고 아니야 풀뿌리 맛있어! 맛있어야만 해! 하는 수준에 머무는 거.
+
파티에 제대로 된 태역가가 있을 필요는 있나?
그게 있는 편이 재미있는 그림은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태역은 마녀가 저항하면 안 되지 않나?
태역은 태초 이전의 정의를 이용하는 술법이기에
마녀나 주인공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
물론, 그걸 모른다는 건 가능한데… 아, 좀 어중간한 레벨의 태역가면 쓸만하겠는데?
그러니까, 여기도 주인공 말고 마녀에 대한 공격책이 있긴 있어야 하잖아.
보험으로 태역가 하나 달고 가는데,
이 놈의 태역가가 아주 간혹 허공도 걸을 수 있는 수준이면,
보험 주제에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이면 괜찮을 것 같아.
완벽한 수준의 태역가면 그냥 모든 술법을 무효화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근원부터 지워버리는 게 가능하고…
잠깐, 시간 돌릴 수 있나?
시간은… 안 되지?
시간의 속도를 바꿀 수는 있는데, 시간을 돌리는 건 불가능해.
아, 순간이동 가능해. 스스로의 위치를 바꿀 수는 없지만,
세계 전체를 이동시키는 거 가능해.
근데 이건 세계 전체를 소멸시키고 이동할 위치에 새로 만드는 거라서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거긴 하네.
음… 태역가는 진짜 어렵긴 하네.
그냥 사이비 짐짝 새끼, 저런 잉여놈을 왜 데리고 가야하는 거지? 수준의 캐릭터로 끌어 내려 놓고,
거의 끝무렵에 갈 때까지 태역술의 무서움을 보여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파티 전멸 위기에서 자기를 제외한 전원을 탈출 시키고 죽는 역할 정도가 좋겠네.
응. 태역술이 뭘 할 수 있는지 알려진 다음에는 죽어야 해.
이건 어쩔 수 없네. 주사위 뜨길 기대하고 도박하는 대안을 남기면 안 되니까.
++
아 이거 생각 못했는데, 저기서 주인공한테 태역술 걸어서 탈출시킴으로써
마녀한테도 태역술을 걸 수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는 게
그림이 예쁘게 나오네.
마녀도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주인공한테 태역술이 걸리는 걸 실제로 보고 당황해서 바로 죽여 버리고
(아 이거 관찰자가 없는 거 개 아깝네? 마녀가 나중에 직접 왜 죽여야만 했는지를 설명해야 하잖아.
마녀가 엄청나게 당황한 건 보여줘야하는데, 정작 주인공이 전장 이탈하기 전까지는
마녀가 당황할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야.
음. 그래, 미랄을 마지막으로 남겨서 미랄이 주인공한테 전해주는 게 맞겠다.
미랄은 마녀와의 싸움에서는 가장 무의미하니까 태역가가 마지막으로 전장 이탈을 시키고,
태역가가 마녀한테 갈갈이 찢겨 죽는 걸 보면서 날아간 미랄이 전달하면 깔끔하진 않지만
어쨌든 구성은 될 듯.)
이제 저 태역가가 죽은 이후로는,
거기에 근접이라도 하는, 실제로 태역술을 쓸 수 있는 태역가는 단 한 사람도 안 남아 있는 거지.
도덕가들이 마녀의 법술을 제대로 카운터 못 치는 명확한 이유도 만들어야 해.
물론 둘의 싸움은 논리 싸움이지만, 그냥 논리에서 밀렸다는 말이 안 되지.
마녀가 한비 해노를 인용하며 싸우게 하는 것도 말이 안 돼.
정작 내가 해노에 동의를 못하는데…
음. 마녀가 법술만이 아니라 명명술도 쓰게 하는 게 좋나?
아, 법술로 마인드 컨트롤 하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명명술로 얘는 진짜 영구기관도 만들고 막 그래서
실리로 꼬드겨 설득하는 거였다?
어… 일단 체크해 둘 필요는 있겠다.
마녀 캐릭터 반전에도 나름… 써먹을 수 있겠고.
+
마녀 캐릭터를 몇 번 꼬아야 하느냐에 따라서 이걸 어떻게 쓸 지 결정될 듯.
한 번만 꼬면…, 법술인줄 알았는데 명명술이었네요!여야 하는데 좀 재미없어지고,
두 번 꼬려면 법술이어야만 하고,
세 번 꼰다면, 법술 명명술 둘 다 할 줄 아는 게 좋겠네.
미랄이 ‘그 나쁜년은 법술 사용자예요’라고 말하는 건 정해져 있는 거고,
미랄은 유생이라 거짓말 못하니 적어도 미랄은 마녀를 법술 사용자라고 알고 있어야 해.
공조참의(캐릭터명 미정)의 배신에 치를 떨어야 하는데,
그게 법술에 의한 배신인지, 아니면 공조참의 본인의 판단에 따른 배신인지 못 알아차리는 건….
상황이 급박했으니까 그럴 수 있어. 미랄은 공조참의의 배신을 겪고도
그게 법술이라는/법술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지 않아도 돼.
미랄과 공조참의 사이 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가까운 게 좋지 않나? 일단 공조참의는 음양가여야 하고….
몇 안 되는 개영가이기도 하니까,
아예 미랄에게 개영과 물리학을 가르친 음양가 스승으로 하는 게 나을 듯.
그나저나 그림자가 닫힌 연대는 언제로 쳐야 하지?
이쪽은 조선의 체계를 모사하는데, 조선까지는 소통이 있어야 하지,
음. 문종한테 뭔가 당했다는 설정 괜찮을 것도 같다.
문종한테 대규모 군사 침략을 받고 그림자를 때려 막았다.
달그림자와 해그림자가 바뀌는 순간에 그림자를 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두 세계의 소통은 끊겼고, 그림자를 건너갈 수 있는 사람도 확연히 줄었다.
중국쪽은 진 소양왕 때 끊겼고, 한반도는 연결이 이어지다 문종 때 끊겼다.
일본은… 남북조 시작 즈음에 끊겨야겠네.
류큐가 좀 더 오래 유지 되어야 할 듯. 사쓰마가 류큐 정벌하는 1600년 무렵에 끊기는 게 맞는 듯.
근데 이럼 문종 이후에 만들어진 제도나 직급이 영향을 안 주도록 싹 검토해야하잖아?
어… 그냥 한나라 관제로 갈까? 아니… 숭례문하고 흥인문은 있어야 하잖아?
아… 성은 똑같이 지어야 해. 연결이 끊긴 이후에도, 성은 똑같이 존재해야 의미가 있는 게,
그림자를 넘어서 액신이 들어오는 걸 막으려면 양쪽 세계에 같은 위치에 성벽이 있어야 해.
현재 이쪽에 성벽이 없어도 버티는 건 문으로 액신을 속이고 있는 거야.
그래서 이쪽에도 남아 있는 숭례문과 흥인문이 아주 중요해.
숭례문 방화, 흥인문 방화 미수, 다 여기에 얽힌 거로 밀어 붙이면서 썰풀면,
대충 세부 설정 안 해도 독자는 속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
그럼 관위는… 한나라로 가는 거야?
이럼 공조참의는… 공부시랑…이나 공부낭중이 되어야 하고,
공부시랑이 맞지? 고려 때 시랑 쪼개서 참판 참의 나눈거니까.
2000년전 관위니까 정밀할 필요 없어. 엄청 많이 바뀌었다고 하면 되지.
+
마녀는 달 그림자 세계의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명명술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거…. 좋다.
마녀의 명명술을 보면서 달 그림자 사람들은 그게 명명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주인공은 저건 명명술이잖아… 하는 거지.
처음에는 자긴 이 세계의 마법은 모르고, 미랄이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갑다 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명술인데? 하는 방향.
+
기본적으로 우리 세계의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술법을 더 쉽게 배운다는 설정을 넣어야겠다.
뭐, 아예 안 깔아둔 설정은 아닌게, 기본적으로 마녀나 주인공이나 다
술법 감수성이 높았으니까.
그냥 다 그렇다고 해두지.
술법 면역에 술법 감수성은 더 높아.
왜 그렇지? 아예 다르다는 걸 아니까.
달그림자 세계의 주민은 평생 술법의 영향력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에
술법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피부로 느끼지 못해.
그런데 해그림자 주민은 아는 거지. 평생 자기가 겪어 온 것과는 다르니까.
그리고 그렇게 술법이 엮이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술법을 쓰는 동안에는 술법에 저항할 수 없어야 해.
그렇지? 아… 그리고 술법 면역 상태에서는 주위 환경 변화에 둔감해져야 해.
그리고 면역 상태의 해그림자 주민들끼리는 서로의 존재를 느껴야하고.
처음에는 그 느낌이 뭔지 몰랐지만, 점점 서로 알아차려 가는 이벤트가 필요하겠네.
마녀가 주인공한테 법술 사용을 시도할 필요는 있을까?
아님 그냥 평범한 미인계로 때울까?
법술을 실패하고 미인계로 전환하는 건 안 돼. 그 상황에 플랜B까지 들고 오면
마녀 캐릭터가 너무 조악해져.
아, 공조참의… 아니, 공부시랑이 배신해야하니까 마녀는 이 계획을 알고 있어야지.
법술을 시험삼아 걸어보면 정말 안 걸리는지 확인하는 이벤트는 있어도 괜찮겠다.
++
이렇게 되면 술법 면역이 아니라
높은 술법 감수성 때문에 술법 저항이 높다는 쪽이 더 말이 되는 거 같아.
특히 마녀의 술법이 달그림자 주민들은 인지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서
술법 저항을 무시하고 박혀 버리기 때문에 위협이고,
주인공은 마녀의 술법도 인지할 수 있는 거지.
그럼 주인공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술법 저항에 대한 교육하는 파트가 있어야겠네.
묵교는 등장 안 시키고 떡밥도 안 던질 테니까 그냥 저 상태로 내버려두면 되고.
(나 아직 묵자는 완역본 한 번 안 읽어 봐서 정설 쪽에 속하는 해석도 모름.)
음양교랑 단약교는 그냥 자연과학으로 내버려두지.
+
K가 던져 줄 때, 마법 설정 복잡하면 그냥 열린우주 마법으로 때우라고 했었는데,
하다보니 진짜 개 ㅈ같네.
이걸 어떻게 열린우주 마법으로 때워?
통찰이 그냥 개 같이 긁어 대는 데다, 예언도 문제고 직감도 문제잖아.
++
열린우주 마법에서 통찰, 예언, 직감은 모두 변수를 심하게 줄이고 우주를 안정화 하는 마법이라서
열린우주처럼 불안정함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세계가 아니면 좀 구성을 긁어 댄다.
생각해보면 저거 디벨롭 할 때 매력만 변수를 늘리는 형태로 굳어졌는데,
대칭을 좀 제대로 잡아야 했어.
통찰, 직감이 변수를 줄이고 예언, 매력은 변수를 늘리는 쪽으로 만들었어야 했어.
대칭 신경 쓰는 건 나뿐이니까 내가 태만했던 탓이지.
예언에 통찰과 직감이 영향을 못 미치게 했어야 했는데,
(매력은 잘도 통찰을 핀포인트로 가지고 노는 형태로 만들면서,
예언이 직감이 붙들리게 만든 게 큰 실수….
어… 생각해보니 이것도 대칭이 맞기는 하구나.)
뭔가 좀 꼼꼼하지 못했어.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