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안 되는 걸 알아 버린 것 같아

Categories 이모젠식 정의Posted on

요전에 디지의 접힌 베이스 마스터링에 대해서 얘기했었는데,
그 때 사실 그 접힌 소리가 뭔가 ‘문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느낌이라서
비슷한 느낌이 드는 노래들을 몇 개 찾아 봤었다.

그리고는 그게 뭔지 영 감이 안 와서 그냥 저렇게 별다른 언급 없이 매듭지어 놨지.
그런데 엊그제 강제 7.1 반향 설정으로 게임을 하던 중에
실수로 플레이리스트 메뉴를 눌러서 barking dog이 재생됐는데,
이게 어? 스러운 거다.
이거…. 강제 7.1 반향을 타겟으로 마스터링 한 거야?

뭔가 긴가민가 한 상태에서 게이밍 헤드폰으로 출력을 돌려 봤는데
아… 이거구나.
이거였구나.
저번에 그 ‘문법적으로 익숙한’ 노래들 돌려 보니 이거 이 헤드폰 7.1,
특히 돌비 애트모스 설정이 타겟이었어.
저 접힌 소리, 위로 올라가지 말라고 접어 놓은 거였어.
starling이나 my girl 처럼 아예 뭘 위한 구성인지 이해 안 되던 노래도
여기서는 이해가 되고.

타겟은 스테레오.
이어폰이든 북셸프든 타워든 스테레오.
아주 제한된 경우에나 2.1.
난 저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있을 때까지의 업계 표준도 당연히 저거였긴 한데….
생각해보니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고,
여전히 스테레오가 표준이겠지만,
강제 7.1을 무시 못할 것 같긴 해.

예전에는 당연히 스테레오가 최우선이었고,
5.1 홈시어터가 유행할 때도 오디오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스테레오 메인에 우퍼 서브였고, 전방 후방 유닛은 그냥 구색만 갖췄지.
전 후방으로 음악을 들려준다고 하면 경악하고 왜요…했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강제 반향 5.1, 7.1 헤드폰을 무시할 수가 없잖아?
결국 저 훌륭한 스테레오 유닛을 갖춘 애들은 30대 중반 이상이야.
새로운 노래 따위 안 찾아 들어.
어린애들 중에서 소리에 신경 쓰는 애들이 가장 먼저 갖출 유닛이
저 게임용 7.1 헤드폰, 거기다 돌비 애트모스 서라운드 앱이야.
저걸 마스터링 타겟으로 잡는 거,
나는 정말 싫지만, 자기 소비자 층의 다수가 저기에 있다면,
저걸 타겟으로 잡아야지.

근데 이럼 어떻게 해야 해?
‘스테레오 타겟으로 마스터링 해야지!’는 못 해.
그건 우리 노친네들 입맛에 맞춰주고 굶어 죽어. 하는 소리야.
‘이건 스테레오 설정에서 개떡같은데요, 7.1 강제 반향으로 들으면 멋져요.’는 더 못 해.
난 강제 반향으로 왜곡시킨 소리 따위를 기준으로 노래를 평가하지 않을 거야.
나아가서, 1인칭 게임처럼 과장된 공간감을 억지로 집어 넣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강제 반향 따위는 켜지도 않을 거야.
‘강제 반향 타겟으로 마스터링 된 건 아는데요, 스테레오에선 너무 개판이에요’는…
결국 내가 서야할 입지는 여기인 것 같기는 한데…
그냥 너무 구차하고 무의미해.
그렇다고 저 7.1 타겟 음악가들을 디칭도 못 해.
디지? 어떻게?
잭 리버? 내가 맨날 이 아이 이것밖에 못하냐고 불평만 하지만…. 못 해.
이 아이가 내 라이브러리의 중추는 아닐지 몰라도, 중요한 한 축이야.
홀리 험버스톤? 여기부터는 할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홀리 험버스톤 같은 애를 버릴 거면
난 그냥 새로 올라오는 메인스트림 꼬꼬마들 쪽은 쳐다도 안 봐야겠지.
칼리 핸슨? 얘는 디칭 가능하다.

결국 이 ‘7.1 타겟 음악가’들은 어린애들 중에서 자기 소리에 가장 신경 쓰는 애들이야.
내가 아직까지 이 어린애들을 들여다보는 이유가 저런 애들을 찾기 위해서인데…
어떻게 버릴 수가 있어?
사실 당연하지, 자기 소리에 신경 쓰니까,
자기 소리가 자기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들릴지에 대해 신경 쓰니까,
강제 반향 타겟 마스터링 같은 급진적인 방향으로 접근하는 거지.

하아. 진짜 알면 안 되는 걸 알아버렸어.
그냥 몰랐다면 맘 편 하게 뭔 마스터링을 이 따위로 했지 하고 넘어갈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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