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Categories 기예가 미란다에게 미친 영향Posted on

70.
이건 해야겠네.

그냥, 이전에 노벨문학상에 대해서 수상자와 같은 국적의 작가들이
자기 노벨상은 물건너 갔다는 식으로 허탈해 하는 것에 대해서
좀 의아해 해왔었다.
뭐 그치, 앞으로 십수년간은 턴이 안 돌아오기야 하겠지만,
그 십수년 안에 죽을 수도 있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물 건너 갔다고 할 정도인가? 싶었지.

그런데 이번에 직접 겪어 보니,
그 허탈함의 근원이 뭔지를 제대로 깨달았다.
“저거… 내 문화적 기반인데.”

자, 나는 한강과 전혀 비슷한 스타일의 글을 쓰지도 않고,
노벨상의 타겟과 담을 쌓기로는
보르헤스나 애투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그 뒷열에는 설만한,
인간보다는 나,
내 삶보다는 내 존재,
내 정신보다는 내 사고에만 관심 있는 작가다.

한강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해서 내 노벨상 수상확률에 실끝만한 영향이 있는 것이 아냐.
당연히, 0에서 0이 됐을 뿐이지.
하지만 허탈하다.
그러니까, 내가 한강과 공유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라면서
충분히 값을 치른, 이 내 문화적 기반을,
저 바깥 사람들은 한강의 스타일과 구분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거지.
“저건 한강이 보여준 세계잖아.”
아니야, 그건 한국 사회에서 자라난 모든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야…

노벨상과는 커다란 담을 쌓은 내가 이럴진데,
거기 근접했던 작가들은 어떻겠는가?
자기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저 국가 턴 돌려오는 십수년 동안
평생 살고 자라온 모국의 사회가 제공한 문화적 배경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는 거다.

저걸, 겪어 보지 않으니까 이해를 못했다.
내 문화적 기반이 뜯겨 나간 느낌.
그게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
내가 내 작품에 그걸 투영하지 않을 지라도,
그건 내 거였는데….
내가 그걸 잘 그려내지 못할 지라도,
저 사람이 그걸 누구보다 더 잘 그려낼 사람이더라도,
그건 저 사람 것만이 아닌 내 것이기도 했는데….
그런 종류의 허탈함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그리고 이제야,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없어 보이는 말을 뱉어냈는지도 이해가 된다.
저들도 겪어 보고 나서야 깨달은 거지.
내 문화적 기반이 더 이상 내 자산이 아니란 것을,
오히려 이제는 다른 것으로 메워 감춰야 할 부채가 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으니 그 대비되지 못한 허탈함에 저런 말이 튀어 나오는 걸 어찌하지 못 하는 거지.

71.
그냥 유튜브에서 문자 관련 영상 몇 개 보다가
올리 리차즈가 작년에 올린 ‘한국어는 어려운가요?’하고 올린 영상을 보게 됐는데….
어….
어….
아니 얘 약 파는데요?

아니, 그…. 한국어가 지독하게 효율화, 단순화 된 언어라서
언어학적으로 쉬운 요소가 많다는 거야…. 그렇다고 치는데….
아니야. 그래도 쉽지 않아.
오히려 저 단순화가 불러온 골이 깊다고.
그리고 언어학적으로 단순한 요소들이 있다는 건 그렇다 쳐도
‘존대법은 경어와 평어의 구분에서만 시작하면 된다’는 너무하잖아.
아, 시작하기 존나 쉬움 계속해놓고 마지막에 FSI 5등급임.
어렵긴 함. 하면 다야?

우리가 외국인들의 존대법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그게 ‘한국어 프라이머리인 어머니가 평생을 옆에 붙어서 교정해주지 않는 한 한국인도 배울 수 없는’
수준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그런식으로 존나 어려운 부분들 다 대충 뭉갤 수 있음.
해버리면 세상에 어려운 언어는 어디 있는데?
질문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리는 거잖아.

아니 그래, 그 영상의 소비자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한국어 한 번 배워볼까?’ 하는 애들일테니,
거기다 대고 그거 존나 어려움. 못할걸?
하고 재뿌리는 건 그냥 멍청한 짓이지.
근데 그래도, 쉽지 않음. 그래서 성취감 죽여줌.
같은 말을 예쁘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
해볼만함. 어려운 건 신경 안 써도 됨. 한참 해놓고
맨 뒤에 조그맣게 어렵긴 함…. 하고 면피까지 하는 건 그냥 약팔이잖아.

72.
나이 서른 셋을 먹고서
뮤직비디오에 무의미한 섹스 장면을 넣으면
자연적으로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쏟아져 온 사회 억압에 대한 저항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 뭐라고 해야지?

아니 이건 뭐 정신 연령이 어린 것도 아냐.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저 나이를 처 먹도록
저런 ‘a little girl with some daddy issues’스러운 세계관을 유지할 수가 있냐고?
열여섯 살 먹은 애새끼가 저래도 유치한데,
서른 셋을 먹고 저럴 수가 있다고?

73.
3×3 eyes 새 시리즈가 완결 되었길래
이번 리디 5만원 채울 게 없어서 사서 보기 시작했는데,
아니 이게 도통 뭔 얘긴지 이해가 안 되는 거다.

3×3 eyes은 20년 전에도 한 부 끝날 때마다 이야기를 한뭉텅이씩 건너 뛰고
그동안 뭔 일이 있었는지 나중에 설명하는 시리즈였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고 있었는데,
아무리 당장 베나레스 머리통이 깨진 상황이라도
칼리랑 칭구칭구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거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칼리 주위에 있는 쟤네는 또 누군데?
왜 첨보는 애들을 내가 알아야한다는 것처럼 구는 거야?
칼리가 내가 생각하는 그 귀안왕 백업장치 아닌가?
하며 25년전에 봤던 만화 줄거리….
아니, 줄거리도 없는 만화의 기본 설정들을 점검하다
맨 앞에 붙어 있던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이게 아마 마지막 3×3 eyes가 될 거다?

….. 어…. 더 있나?
중간에 시리즈가 더 있었나?
일본에서는 원 시리즈 1-4부가 뭐 따로따로 다른 이름으로 나왔거나 해서
그런 종류의 얘기라고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생각해보면 20년만에 새 시리즈가 나오는데
뜬금없이 마지막 운운은 이상하잖아.
르 귄이 20년만에 테하누를 내면서 뜬금없이 마지막 어스시 운운…
했네?

어쨌든 찾아보니 하나 더 있었네?

그러니까, 2015년에 일본에서 나온 시리즈가 2020년에 한국에 나왔고,
그래서 난 그것부터 사기 시작하다 저거 완결권 뜨고 또 새 시리즈가 나오길래
새 시리즈는 위시리스트에 넣어 놓고는 잊어 버린 거였어….

…인지 알았는데,
저 2015년작을 꺼내서 1권을 보니
나 이거 봤는데?
봤다는 기억이 없고 앞부분 새 악역들 나오는 건 생소한 건 맞아.
하지만 우주정거장에서 작업하는 부분 연출이랑 구도가 다 기억나는데?
…………?

하…. 대체 뭐가 어디까지 꼬인 거지?

+
아… 알았다.
이게 2020년에 국내 출판이 완결 됐을 때 보기 시작했다가,
칼리가 처음 나오는데서 쟤가 누군데? 했던 거야.
20년 전에 본 본편 마무리를 기억을 못한 거지.
그래서 찾아보고, 아, 이렇게 끝났었지.
그렇구나. 귀안왕이 칼리한테 들어가고 완전히 마무리는 안 된 거였구나…
하면서 더 훑어 보니 어? 새 시리즈가 또 있다고?
어? 이미 한국판 나오고 있다고?
하고는 그래, 네 권짜리 누구 코에 붙임?
저거 완결 나면 그 때 보자….
하고 내버려뒀던 거구나.

74.
삼국지 8 리메이크 평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 머저리들이 13, 14 까고 8을 칭찬하고 있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의아했는데…

아. 이게 슈로대 플레이어 베이스 같은 거구나 하는 걸 꺠달았다.
그렇구나.
얘들한테는 게임이 게임으로서 기능할 필요가 없는 거구나.

게임이 구조가 없는데,
리소스도 없고 리스크도 없고 리턴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재미있게 해요?
…는 언제나 내가 품고 있는 의문이었지만,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고,
자원 관리를 할 필요가 없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고,
그냥 클릭 클릭 클릭만 하면 진행되는 게임을 원하는……

응.
그러니까 삼탈워를 가지고 삼국지를 까던 애들과
지금 이 8리메를 재밌다고 해대는 애들은 다른 애들이라는 거지.

그리고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이 전투가 재밌다는 애들이다.
아니 시발 이게 재밌다고?
10일간 아웃복싱하며 빙 둘러 가서는
맨 끝에서 한 부대 연격 강격 제사 찜질로 잡아 내고,
자살부대 하나 열화로 적 이동 각 좁혀서 돌격 난격 각 잡으면
3대 1로 싸워도 피해 없이 탈탈 털어내는 병신 전투가 재밌다고?
아니 그냥 무적 모드 쓰고 무쌍을 하세요….

응. 쟤네는 몇 발을 들어가야 AI한테 어글 끌리는지를 몰라.
열화로 어떻게 이동을 통제하는지 몰라.
돌격 난격 2부대한테 낭비하는 게 손해라고 생각 안 하고,
이동각을 어떻게 잡아야 난격을 제대로 넣을 수 있는지 몰라.
생각을 안 해봤으니까 몰라.
사람들은 게임하면서 그런 거 생각 안 해.
머리가 달렸는데 어떻게 생각을 안 하지?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