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만화는 힘들어요…

Categories 기예가 미란다에게 미친 영향Posted on

92.
근래에 숙제하느라 연애 만화들을 몽창 몰아보게 됐는데,
(그 뭐랄까, 10대 남자애들의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관점을 좀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근데 라노벨은 진짜 한 줄을 읽는 것도… 하, 시발. 레 미제라블 코제트 묘사 깐 거 반성합니다.)
진짜 대부분은 진행해 나가는 게 너무 너무 힘든데…
오히려 생각보다 괜찮은 게 ‘있어서’ 놀랐다.

많지는 않은데,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게.
세팅만으로 어… 극혐. 무슨 망상이 투영되고 있는지 뻔히 보이잖아…
싶었던 것 중에서, 나름? 어? 싶은 것들이…

대충 생각 외로 훌륭한 주제의식이 있기도 하고,
어쨌든 깔끔하고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있기도 하고,
그냥 다 때려 치우고 저 세팅을 무시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퀄리티가 있기도 하고.

특히 놀라운 건 저 압도적인 퀄리티 쪽인데,
그 대표적인 게 슈퍼 뒤에서 담배 피우는 두 사람.
뭐랄까.
그림을 잘 그린 것도 아니고, 대사를 잘 뽑은 것도 아냐.
근데 슥슥 그려낸 느낌의 간략한 그림과 컷 템포로 하는 감정묘사가 정말 촘촘하면서도 깔끔하다.
세팅? 어 별로긴 하지. 20살 차이 남녀의 연애 감정은 좀 그래.
캐릭터도 설득력 없고, 사건은 작위적이야.
근데, 그런 거 신경 쓸 의미가 없게 만드는 전달력이 있어.

이게 진짜 처음 보는 형태의 장점이라 어느 정도 급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강철의 연금술사의 액션 동선 구성 같은 장점과 비빌 수 있는 느낌 같아.
강철에서 액션 동선 구성은 그 만화의 빈약한 액션 연출을 제대로 덮어 씌워서
작가 본연의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하잖아?
마찬가지로 이것도 저 설득력 없는 캐릭터를 이 전폭적인 감정 전달로 덮어 씌워서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줘.
캐릭터가 설득력 있을 필요가 없지. 나 자신에게 ‘내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설득할 필요는 없잖아?
난 그런 사람이야. 얼마나 설득력 없고 기반이 빈약한 캐릭터일지라도,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나 스스로 부정할 수는 없잖아.
그렇지, 창작물은 그래선 안 돼.
하지만 이 정도 전폭적인 감정 전달이 가능하면 그래도 된다는 거야.
오히려 설득력 없는 캐릭터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니 더 각별해 지지.
난 이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야,
있을 법 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야.
이해할 수 없고 있을 법 하지 않은데도 나 자신처럼, 내 소중한 친구처럼 지켜보게 되는 거야.
심지어 표정 묘사도 제대로 안 해주고
시선처리, 턱의 각도, 이런 단순한 벡터로 감정을 전달한단 말이지?
저 주동 캐릭터의 시선 진행 방향과 컷 진행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곳이 많은 게
콘티도 잘 짠 건 아닌데…. 저게 된다니까? 그냥 신기해.
(사실 이게 타야마는 항상 안쪽인 왼쪽에 앉아서 자기 오른쪽을 보며 말해야 하고,
(처음 사사키를 초대할 때는 자리를 비워두지 않아서 반대로 앉는데,
이후에는 사사키를 기다리면서 바깥쪽 자리를 비워둔다.)
야마다도 카운터에서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손님을 왼쪽으로 내보내기에,
두 개의 주 무대가 전부 방향이 한정 되어
저 시선 방향 맞추는 게 쉽지는 않은 만화긴 하다.
(‘2번 계산대의 야마다’라고 캐릭터를 만든 게 성대한 실패이긴 하다.
그걸로 만들어지는 캐릭터는 미미한데 반해서, 방향이 다른 계산대를 넣어서
필요한 경우 반대 방향 계산대에 세울 수 있는 우회로를 날려 버렸어.)
근데 타야마가 자기의 오른쪽 위, 만화 컷 기준으로는 왼쪽위를 째려보는 컷으로
한 줄이 끝나고 오른쪽 아래로 컷이 넘어가는 건 심하잖아.
거기다 그 타야마의 시선을 따라가는 게 그 순간의 몰입에 중요한 만화에서 말이야.
당연히 옆 컷들을 잡아 늘려서 째려보는 컷을 아랫줄로 내렸어야지.)

+ 다시 생각해보니, 저게 시선 트래킹보다 컷 템포가 중요한 건가? 싶어서
한 번 더 훑어 봤는데… 어, 아닌데, 저긴 컷 템포 조금 희생해서
시선과 진행 방향 맞추는 게 더 중요한 장면인데?
아니 작가는 못 볼 수 있다 쳐도, 편집자도 저걸 못 보고 넘어갈 수가 있나?
이 작가 손 느리지도 않을 거 같은데….
음… 저게 잡히는대로 빠르게 슥슥 그려낸 게 아니라
정성을 다해 그렸는데 저거일 가능성도 고려해 봐야 하나?
아? 얘 로쿠레이 작가야? 응. 같은 그림체긴 하네.
근데 그럼 이건 로쿠레이보다 빠르게 그리는 거 맞을 텐데?
로쿠레이가 훨씬 복잡하고 선도 많이 쓰지 않나?
아 그… 로쿠레이 생각하면 그냥 콘티를 겁나 못 짜는 거구나.
그렇네. 로쿠레이는 이렇게 못 만들잖아.
감정 전달이 중요한 극이 아닌데다 캐릭터 갈등 구도도 식상하고,
종종 액션도 넣어야 하니 컷템포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게 불가능하고…
그러니까 콘티 개판으로 난장판 되는 게 매번 문제가 되잖아.
아… 그래. 로쿠레이는 이런 게 팔리겠지? 하고 존나 힘 빡주고 자기가 못 그리는 만화를 그리는 거고,
뒷담배는 이런 게 팔리겠어? 하고 대충 슥슥 자기가 잘 그리는 만화를 그리는 거… 같네.

+
그러고보니 요즘 간간은 편집자들이 방임 하나?
점프도 예전처럼 목줄 짧게 잡고 ㅈㄹㅈㄹ하지는 않는다고 듣긴 한 것 같은데,
간간은 강철 시절에도 좀 방임이었는데…
그 때보다 더 내버려두는 것 같단 말이지?
원래도 편집색 옅고 작가 개인 기량에 많이 맡겨두는 잡지긴 했는데,
요즘은 로쿠레이처럼 기술적인 영역에서 많이 손봐야 하는 만화도
별 수정이나 발전 없이 꾸준히 연재되는 게….

++
아니 근데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네?
로쿠레이 저거 콘티 문제…
저거 내버려 둘 수가 있다고?
아니…. 그…. 그러니까….
아니 그래.
자, 로쿠레이 정도의 콘티 문제를 가진 만화는 많아.
그걸 다 교정할 수도 없고, 콘티를 편집자가 끌고 가는 건 안 돼.
하지만 저 작가는 저 정도로 처박혀 있을 작가가 아니잖아.
뒷담배에서 보여주는 걸 보면,
콘티 정돈하고, 캐릭터 구도 좀 쳐내고, 구성 좀….
….
아…. 그건 새로 그리는 거구나.
….
그렇네.
아.
네.
이러고 생각해보니까, 저게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거란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뒷담배는 내가 말한 편집자적 정련이 다 들어간 작품이야.
캐릭터 구도 못 잡으니까 두(세) 명의 주역을 제외하고는 다 선을 엷게 연결하고,
구성 못하니까 사건보다 장면에 힘 줘서 에피소드 끌고 가고…
오히려 편집자가 이런 거 팔리니까 이렇게 해 봐 하면 로쿠레이 같은 거 안 나오지.

93.
지금 생각해보면 딱 하나 바꿨어야 할 게 있다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했던 일들이다.
난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부고를 많이 알리지 않는 편인데,
그게, 대게 내게는 별 일이 아니고,
괜히 내게 부고를 들을 사람들이 날 신경 쓰면 그게 귀찮기 떄문이다.

그런데, 외할아버지 때는 좀 알리고 위로를 받았어야 했고,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는데 날 위로해준 사람들에게 값을 더 제대로 치뤘어야 했다.
도망가지 말았어야 해.
그걸 회복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낭비했다.

그… 혹시나 이걸 보고 있다면,
미안해요.
그 때 신경 써준 걸 내가 더 제대로 감사해야 했어요.
내가 그리 능동적이지 못하게 널 끊어 낼 때,
그 감사를 잊지 않았어야 했어요.
그런데 난 나만 생각했고, 그 생각조차 게으르게 했고,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도 더 큰 손실을 남겼네요.
미안해요.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 말을 하고는 싶었는데,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 여기에 써요.
이것도, 미안해요.

94.
컴플먼트가 대충 18/21+a 정도 만들어졌는데,
저 +a가 좀 걸리적 거린다.
21개 딱 자르면 좋은데,
지금 자리 못 찾은 게 레나랑 페리스와 실베스터, 되씨 정도인데,
21번째에서 애비 세이지/애비게일 오스본/일사 드랑어/올라 가틀란드 중 하나가 뱉어질 거라서
….
하나 더 만들긴 해야할 것 같아.
레나나 되씨 정도는 그냥 빼도 될 것 같긴 한데,
21번째에서 뱉어질 후보들은 도저히 못 빼잖아?

근데 그래서 저기서 뱉어진 애 중심으로 플레이리스트가 하나 제대로 나오긴 할까?
그냥 좀 확신이 안 들어.

95.
저 숙제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천재’가 등장하는 거였다.
너무 힘들어서 설마하고 내 소설 중에서 천재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들도 다 다시 읽어 보기까지 했어.
그러게,
일반인들은 천재를 볼 일이 없고,
보더라도 피상적으로 파악할 뿐이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냥 기본적인 지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건 너무 하잖아.
잘 외운다고 머리가 좋은 게 아니야.
물론 내가 지지리도 암기능력 없는,
휘발성 메모리만 써서 퍼포먼스를 올리는 타입의 고지능자라서 더 눈에 밟히는 거긴 하지만,
내 주변의 다른 고지능자들을 봐도, 지능이 높다고 뭔가를 잘 외우지 않아.
로씨 메소드는 오히려 지능이 낮은, 좀 더 정확히는 정보 연계 능력이 낮은 사람만 쓸 수 있는 거야.
정보를 연계해 묶을 매듭 없는 끄트머리가 남아 있어야 쓰는 건데,
정보 연계 능력이 좋은 사람은 그게 남아 있질 않다고.
수십초만에 집중해서 남의 말이 들리지 않게 되는 사람은 없어.
그런 사람을 봤다면 그건 못 들은 척 하는 사기꾼이야.
남의 말이 들리지 않는 집중 상태에는 전두엽을 풀로 활용하는 공상이 필요하고,
저기에 진입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려.
그리고 애초에 수십초만에는 그걸 시작하기 위한 소재도 못 건져.
텍스트를 읽다, 전개가 막히고, 아 이게 무슨 말일까 정보를 크로스체크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개념을 이리저리 이어 보는 시도가 시작 돼야 시동이 걸리는 건데,
어떻게 책 잡은 지 수십초만에 남의 말이 안 들리겠어?
상황 전개에 대한 계산이 빠른 사람은 어떤 특정한 시나리오를 예상하는 게 아니라
변수를 좁혀 나가는데 능한 거야.
그래서 자기가 배제한 영역으로 사건이 전개되면 대응 능력을 오래 잃어야 해.
임기응변이 좋은 거하고는 오히려 반대 타입이야.
반대로 임기응변이 좋은, 흐름 읽는 감각이 좋은, 낚시꾼 타입은 그렇게 머리가 좋아 보이지 않아.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평소 퍼포먼스를 상당량 희생해야 해.
물론 기본 퍼포먼스가 높으면 그만큼 희생하고도 일반인들한테는 빠릿빠릿해 보이겠지만,
비슷한 고지능자 사이에서는 얼빠진 놈으로 밖에 안 보여.
‘천재들 간의 싸움’을 그리려면 그렇게 같은 눈 높이에서 장단점이 있어야지.
그렇게 하는 게 현실적일 뿐 아니라, 밸런스도 좋아지잖아.

근데, 그나저나,
난 내 소설에 생각보다 다양한 타입의 천재를 묘사했었구나.
나나 C랑 비슷한 타입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기 저기서 많이 베껴왔네.
s는 T를 스펙업 한 거고, y는 L이랑 비슷하고, i는 P타입이구나.
어… P는 대학 2년차 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사람인데도
(학과 개강회 때 말고는 말은 딱 두 번 나눠봤다.
웃긴 게, 말 할 때 입꼬리가 움직이는 방식*이나 논리 전개 양식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이나 출신 고등학교는 기억도 안 나. T랑 같은 대구과학고였나? 같은 동아리였나?
같은 동아리였던 것 같지? T가… 스팍스였나? 아닌데? 로코 운영하던 동아리가 어디지?
아, 그것도 기억 안 나.
* 이게 좀 많이 독특하긴 했다.)
생각보다 꼼꼼하게 특징을 잡고 베껴내긴 했다.
+ 아니 잠깐만? 나 이거… i 초안을 대학 2년차때 잡았나?
어…. 잠깐? 그런…가? 아. 이거 2년차 때 쓴 단편에서 발전시킨 캐릭턴가?
그렇…지? 아니, 아…. 그, 이럼 개인정보를 너무 까놓는건가?
음. 아냐. 이걸로는 내 소설을 전부 읽어 봤다고 해도 추측 못해.
습작 단편까지 다 읽은 게 아니고서야.

+
아 그리고, 하나 더 이해 안 되는 게,
요즘 어린 만화가들은 4컷 만화가 뭔질 모르나?
콘티 안 짜고 그냥 1열로 4컷씩만 끊으면 그게 4컷 만환 줄 알아?

무슨44 조랍시고 이지랄해 놓고자빠 졌어진짜.

96.
저거 숙제 하느라 그 비스크돌은 사랑을 한다와
2.5차원의 유혹을 보면서….
코스프레 하는 애들이 어떤 정신 상태인지를 드디어 이해하게 됐다.

아…. 이 새끼들 창작을 얕보고 있구나.
창작이란 게 캐릭터만 만들면 굴러 가는 줄 아는구나.

응. 저걸 알게 되니까 쟤네들이 보여주는 작태들이 한 큐로 쫙 이해가 돼.
아하, 그래서 이걸… 그래서 저걸…
응응.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아니라 캐릭터에 천착하는 성향이니
저렇게 엉터리 같은 짓들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야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당연히 캐릭터에도 신경 써.
내 이야기와 딱 맞물려서 완벽하게 전달하는 도구여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
어떻게하면 캐릭터가 내 이야기의 장점을 어필할 수 있을까를 엄청나게 연구한다고.
하지만 캐릭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이야기에 신경을 안 쓰는 거야.
그냥 이 캐릭터가 이런 저런 포즈를 지어 보이는 것에만 관심 있어.
이야기는 단순히 이 포즈에서 저 포즈로 옮기는데 필요한 가이드라인일 뿐이지.
그런데 이야기는 일단 독자를 끌어다 앉혀 놔야만 어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더 새끈하게 뽑아서 내 캐릭터의 매력을 더 어필한다 같은 선택지는 나올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 코스프레 하는 애들이 저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
맥락을 쌓는 법을 모르는 거야. 그걸 쌓으려는 훈련도 안 했고,
왜 쌓아야 하는지도 몰라.
재미없고 쓸모 없는 노가다처럼 보이는데,
업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거 해야 된다고 하는 거야.
거기다 그 업계 사람들엔, 자기가 좋아하는 코스프레를
아무 생산성 없이 작품의 이미지를 착취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얘기하는 경우까지 있어.
그러니 이렇게 난 그런 쓸모 없는 노가다 안 하겠다고 나서는 거지.

선생님들,
노가다 하셔야 해요.
그거 존나 들어파고 짜맞추고 제대로 된 위치로 배치했을 때
그 캐릭터가 빛나는 거예요.
그냥 아무것도 없이 포즈만 팔고 싶다면 저기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가세요.
여긴 존나 노가다 안 하면 작품성 안 갖춰지는 걸 둘째치고 팔지도 못하는 시장이에요.

97.
세상에, 나한테 이런 추천목록을 바란다니 뭐하는 거야?
알았어요. 써줄게요. 진짜-_-

슈퍼 뒤에서 담배 피우는 두 사람 9+
장점: 대부분의 단점을 덮어 지워버리는 압도적인 감정 전달
단점: 빈약하고 구조적 고려가 적은 콘티, 아직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 시작하면 무슨 얘기를 하지?

내 마음의 위험한 녀석 8++
장점: 꼼꼼하고 설득력 있는 여성 심리 묘사, 촘촘한 구성, 빈약한 그림을 효율적인 데포르메로 극복하는 기술
단점: 설득 되기 전까지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들, 과하고 설득력 없는 (주인공 외) 남성 심리, 굳이? 싶은 극초반 남주인공 캐릭터 설정, 구성에서 단발성 갈등요소로 소모되고는 갈등이 삭제된 뒤에도 치워지지 않고 오히려 기존 관계망에 억지로 끼어드는 조연 캐릭터, 덕분에 계속해서 비대화되는 불필요한 인간 관계 관리 이벤트들, 세부에 신경 쓰다 큰 줄기를 놓치는 구성.
+ 적체되는 조연 캐릭터 문제가 좀 심각한데,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연재가 계속될 수록 점수가 까일 듯. 적어도 스토커 모델과 누나 밴드의 드러머 캐릭터는 구성을 계속 좀 먹기 때문에 빨리 정리해야 함. 최소한 출연 빈도를 지금보다 한참 낮춰야 함. 또 억지 해석을 해대는 친위 독자층에 의한 과대 평가로 평론이 심하게 오염 되어 남의 평론에서 내가 놓친 장점 뽑아 먹기가 어렵다는 것도 큰 문제. 이 정도 잘뽑았으면 내가 놓친 장점도 꽤 있을 텐데, 다른 사람 평론을 보면 억지 찬양이 많은 추천을 받아서 제대로된 평가를 보기가 힘듦.

그리게 된 이상 8+
장점: 최고급 콘티, 그 콘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좋은 프레이밍, 훌륭한 투시 구도 이해, 1권을 버린 뒤에 확연하게 성장하며 매력을 갖추는 주인공들.
단점: 내마위의 아류로 시작해서 확실하게 내다 버린 1권 플롯(스토리는 나쁘지 않은데 플롯이 개 쓰레기, 캐릭터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스토리가 변경되어 플롯 충돌이 생긴 것 같음.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전혀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2권 이후의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기반이 제대로 드러났으면 플롯 구성이 합당해지는데, 이게 1권 플롯에서는 오락가락하고, 그나마 남주인공의 인식에 따라서 그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야기 자체가 오락가락함.), 사오거나 사진 트레이싱으로 만든 배경이 프레이밍을 따라가지 못해 투시 구도가 뒤틀리는 문제, 직접 그린 배경은 투시선을 따라서 직선적으로 배치되어 단조로움, (투시 구도의 이해는 철저하고, 복잡한 인체 포즈를 그 투시 구도에 딱딱 맞춰 그리는 건 잘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그 투시구도에서 곡선 오브젝트 배치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배경에서는 곡선 오브젝트를 아예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함. 이게 지나쳐서 배경이 단조로움.) 직접 그린 근경에 사온 원경이 들어가는 경우 그림이 완전히 뒤틀림.
+ 격주 24페이지, 휴재 합쳐서 실 연재량은 월간 36페이지 수준인데, 월간 24페이지 수준으로 배경을 전부 그리는 쪽을 택하는 게 만화 퀄리티 유지에 좋아 보이지만…. 그럼 흥행 망하겠지, 이런 만화가 8개월에 한 권씩 나오면 뭐. 3D 툴을 좀 배우면 사온 배경을 투시구도에 맞게 변형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이걸 연재 중에 배우라는 건 미친 소리고…. 적어도 원경의 고층 빌딩 같은 건 좀 더 단순화 하더라도 사서 붙이지 말고 직접 그리는 쪽이 좋아 보이긴 함.

철야의 노래 9–
장점: 좋은 소재, 소재에 주제를 녹여내는 기술, 훌륭한 콘티, 그 콘티를 소화해내는 잘 가다듬어진 그림, 좋은 분위기 연출, 어반 팬터지에서 중요한 꼼꼼한 배경 그림.
단점: 식상한 주제, 삐걱거리는 구성, 목적을 감추고 분위기를 만드는데 열중하다 목적을 잃어버린 캐릭터들, 작가 본인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는 길 잃은 스토리, 장면 연출에 집중하다 전달력을 상실해 버린 플롯, 빼어난 그림 솜씨에 비해서 투시 구도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해서 생기는 원근 불일치, 그 구도의 문제를 극대화시키는, 프레임을 많이 움직이는 콘티.
+ 컨셉과 느슨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가 최고 툴인 만화라서 원근 불일치가 그림 분위기를 해치는 게 다른 만화(이를테면 나가토로양)에 비해 아주 큰 단점임. 다른 만화에선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배경에서 사다리 투시 각도가 잘못된 것 같은 게 이 만화에서는 고즈넉하지만 어째선지 모를 불안감이 천천히 죄어 들어오는 그 분위기를 박살 내 버림. 물론 그 분위기는 탐정 에피소드 갈등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그냥 퉁쳐버린 이후로 플롯과 스토리가 대신 박살 내 주기 때문에 뒤쪽 반토막에선 원근 불일치 따윈 문제가 안 되긴 함.

사정을 모르는 전학생이 거침없이 다가온다. 9–
장점: 그냥 정수부 9점 박고 시작하게 만드는 주제의식.
단점: 같은 주제를 계속 이끌고 나가지만, 정작 주제에 대한 다각적 시각과 탐구 의지가 없음, 그로 인해 4권 만에 끝난 이야기가 아무 진전 없이 계속됨.

결혼한다는 게, 정말인가요? 8+
장점: 좋은 주제, 주제에 대한 다각적 탐구, 큰 장점도 없지만 단점 없이 깔끔한 그림.
단점: 식상한 소재, 주제 연구를 위해 소모되는 극단적인 캐릭터, 기묘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갈등구조, 주제와 어긋나는 작가 본인의 세계관, 절망적인 이야기 구성, 의미 없이 깔린 맥거핀.

괴롭히지 말아요, 나가토로 양 7++
장점: 빼어난 구성, 나쁘지 않은 주제와 전달 방식, 잘 만든 개성 있는 캐릭터.
단점: 복잡한 포즈와 액션이 많이 나와야 하는 만화인데도 매번 무너지는 원근, 콘티 구성을 무너뜨리는 수준의 풀프레임과 근접프레임의 원근 괴리, 리액션 자판기에 불과한 조역 캐릭터들. 처음 기획에서 벗어나 이야기 전체를 발산시키는 주제.
+ 초기 기획이 지나치게 느슨했고, 1년 반 타이머 걸린 이야기에 구성을 만들고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주제가 이야기를 발산시키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음. 조역 캐릭터들도 지나치게 생각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이미 두 주역 캐릭터가 확고하게 주제를 붙들고 있는 이상, 굳이 생각 있는 조연들이 다른 관점을 제시할 필요는 없을 듯함. 적절하게 생각 있는 행동을 해준다면 더 좋겠지만, 깔끔하게 필요한 수준으로 생각을 갖출 가능성보다는 사족이 될 가능성이 확연히 높아 보임.

오늘부터 시작하는 소꿉친구 8–
장점: 좋은 아이디어, (초반에는) 좋은 수행.
단점: 2권만에 이야기가 끝났는데 뭘 어떻게 할 거죠? 그리고 할 이야기가 없으면서 단점이 되는, 장점도 단점도 없는 깔끔하고 특별할 것 없는 그림.
+ ‘새로 사귄 소꿉친구’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는 세상과 그 개념을 밀어 붙이는 여주인공, 거기에 질질 끌려가며 동조하는 남주인공의 갈등 구도를 만들었어야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데, 이 갈등을 만들지 않고 아예 개념을 세상으로부터 숨기는 선택을 해버리니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도 않고 끝나 버렸어. 이걸 진짜 어떻게 할 거지? 뭐? 한국 수입이 4권으로 끊긴 거지, 이게 12권이나 나왔다고? 뭐?????? 어떻게 했구나…. 어떻게 할 건지 진짜 모르겠는데, 어떻게 하긴 했나 보구나…..

여기까지가 대충 이번 숙제의 7,8,9포인터.
대부분은 3포인터 수준이고, 5점 6점도 몇 개 안 될 거 같은데 그 정도 레벨은 옥석 가리기가 귀찮음.
대략 200종 정도 만화를 훑어 봤고, 1권 구매는 62종, 후속권 구매는 23종 했는데…
거기서 7포인터 이상은 저렇게 일곱개 뿐.
솔직히 뭐랄까 다들 5등분의 신부 같은 만화들일거라 생각해서 저것도 없을 줄 알았음.

내마위는 개 호들갑에 비해서는 못하지만, 호들갑 떨만한 이유가 있는 만화였고,
나가토로양은 저게 제대로 되어 있을 거라고 진짜 상상도 못했음.
철야의 노래는 들어는 봤는데, 듣던 거랑 아예 다른 만화.
그리게 된 이상은 1권 보고 콘티 구성이 너무 너무 아까워서 연재분 털어 보게 만들었는데,
2권 분량부터 플롯 퀄리티가 수직 상승하는 거 보고 어이가 없었음. 이거 후속권 정발 나올까?
…. 2권 종이책 작년 11월에 나와 있구나. 계속 나오긴 나올 듯?

  1. 93// 아니 남한테 쓴 글에 이런 말 다는건 좀 그렇긴 하지만, 진짜 대단하다 싶다. 자기만 알았다고 사과하는 글에서도 자기 손실이 컸다는걸 사과한다고? 아니 그냥 와….. 그게 이런애란건 이미20년전에 알았지만 진짜 대단하다 그래

    1. 어… 딱히, 서로 주고 받은거면 미안하지 않지.
      음, 그러니까 적어도 이런식으로 미안하지는 않지.
      나 때문에 둘 다 손실이 생겼으니 미안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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