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있잖아요… 왜요?

Categories 이모젠식 정의Posted on

어… 그러니까…
왜?
아니 이런 노래를 아예 안 할 사람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왜?

이건 명료했잖아.
하려는 게 뭔지, 할 수 있는 게 뭔지, 해낸 건 뭐고, 해낼 건 뭔지.
정말 명료했잖아.

저건 대체 뭐야?

그래, 저건 그렇다쳐. 저건 AIGW처럼 명료하진 않아도
뭔가 어림잡히기는 해.

이건 대체 뭐야?
랩인가?
랩으로 쳐 줘야 하나?
아니, 랩으로 쳐 줄 수 있냐 없냐 이전에,
그걸 니가 왜 하는데?

새해 첫 앨범부터 이래버리니 머리가 미친듯이 아프네.
내가 이딴 것 때문에 마감을 당겨 끝냈다고?
이 앨범 계속 들어야 해?
AIGW 같은 싱글 있으니까 11번까지 들어야 해?
11번이라고 ㅅㅂ? 뭐 저기가 10번 자리이긴 한데… 그래도.

3rd time’s a charm: 핍 블롬 새 앨범

Categories 로빈 굿펠로우의 전언Posted on

핍 블롬의 세 번쨰 앨범에 많은 것을 기대했다하면 거짓말이겠죠.
물론 Is This Love?은 훌륭했지만,
훌륭한 싱글 내놓고 앨범 꼴아 박는건 핍의 주특기였는걸요.

앨범 전체를 꿰뚫는 스타일이나 주제가 없다는 건 문제가 이닐 정도로,
핍은 앨범을 쓸데 없이 자주, 쓸데 없이 길게 만들었어요.
퀄리티 컨트롤이 전혀 안 되는데, 노래를 찍어내면 뭐하나,
그거 찍히는 대로 10곡씩 끊어서 앨범이랍시고 묶는 건 대체 왜인가…. 싶었죠.

앨범은 원래 그렇게 찍는 거였긴 했죠.
50년대엔 말이에요.
지금에 와서 70년 전 감각으로 앨범을 찍을 거면 차라리….

그런데, 정말로 삼세번은 마법인지,
이 핍 블롬의 세 번쨰 앨범은 핍이 지금까지 싱글에서 보여주던 매력을
잘 갈무리해 담아내고 있어요.

스타일이 하나로 잘 일치하기까지는 않더라도,
많이 개선 됐죠.
특히 기존 앨범에서는
Taxi Driver나 Daddy Issue 같은 핵심 싱글에는 넘쳐 흐르는 장난기가
다른 노래에선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게 제대로 해소 됐어요.
Tiger – Red – Kiss Me by the Candlelight의 3연타는
단순히 장난기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진심인 척 농담인 척 구분하기 힘들게 만드는 밀당이 전에 없던 긴장감을 만들어 주죠.

나아가서, 이 긴장감이 앨범 전체를 ‘듣기 즐거운’, 재미 있는 앨범으로 만들어줘요.
I Can Be Your Man 같은 노래는 스탠덜론으로는 뭔가 싶은
밋밋하고 재미없는단순한 노래죠.
(+ 생각해보니 ‘재미없는’은 잘못된 단어 선택이에요. 재미없진 않아요.
전달하는 메시지에 비해서 너무 길고 비어 있다 싶지, 스탠덜론으로도 재미 없지는 않죠.)
하지만 저 T-R-K 3연타 뒤에 붙은 이 노래는
‘앞에 한 거 다 농담인 거 알잖아’라고 말함으로써 그 의도를 더 헷갈리게 만드는 노래예요.
정말 순수한 농담이라면 저런 말을 덧붙이는 게 더 이상해지니까요.

그래요, ‘듣기 즐거운’은 이 앨범에서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핍 블롬의 첫 두 앨범은, 그리고 그 이전의 EP들조차,
그 디스크들은 죄다 숙제처럼 느껴졌어요.
아, 10 트랙 채워야 하는데….하는 강박에 그냥 막 쥐어짜는 게
그저 한 발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었죠.

하지만 이 앨범은 그렇지 않습니다.
트랙들은 전부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누구도 억지로 하고 있지 않아요.
대단히 새로운 시도도 없고,
잘 깎인 완벽한 성취가 있지도 않지만,
다들 왁자지껄 재미있게 놀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생기는 거죠.
그리고 그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에
Is This Love?을 한 발 당겨 배치해 놓은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에요.
내가 저 싱글이 나왔을 떄 먼저 듣지 않았다면,
‘아, 이게 다 구나, 대단한 건 없구나’ 하고 있다 제대로 한 방 먹었을 거예요.

맞아요, 사실 잘 뜯어 보면 결국 Is This Love?과 Tiger 정도를 제외하면 별 것 없잖아?
라고 할 수도 있어요.
기술적으로 잘 만든 앨범은 결코 아니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을, 해선 안 되는 것을 한 앨범도 아니고요.
하지만 난 이 42분간의 승선 동안 정말로 즐거웠어요.
앞으로 대여섯번 더 탈 의향도 있어요.
컴플먼트 시스템이 제대로 체계를 잡은 이후로
내가 반복해서 돌리는 앨범은 몇 개 되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요?
아, 그건 7+1.5점이어야 할 이유지, 8+0.8점일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세상엔 정수부 숫자를 바꿔야할만큼 가치 있는 즐거움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