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을 평가한다고 생각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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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단편 소설은 개별로 읽어서는 안 되고
한 권의 단편 소설집 전체로만 읽어야 하고,
그렇기에 응당 단편 소설집은 그 전체에 유기적인 구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개개의 단편 소설이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느냐보다,
소설집 전체의 유기적인 구성이 중요하다고 하죠.

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러냐고요?
대중음악 평론 판에 널리고 널린 게 그런 사람이잖아요.
앨범 완성도가 싱글 트랙 완성도보다 중요하다는 사람들.

앨범과 단편 소설집의 존재 이유는 똑같습니다.
원래 플레이타임 2분이었던 실린더 하나에 꾸역꾸역 늘려 들어가던 3-4분짜리 노래,
손바닥만한 소책자로 엮여 들어가던 5천 단어 남짓의 소설이
가판대에서 팔리던 19세기 말 20세기초의 혼란이 가라앉고,
30분 넘는 플레이타임을 욱여 넣는 게 가능해진 레코드 플레이트들과
2-4만 단어 수준의 중편 소설 분량 페이퍼백 제본이 출판의 기본이 되면서
팔기 마땅치 않아진, 하지만 여전히 생산 되고 있던 싱글 트랙 노래와 단편 소설을
모아서 상품으로 만든 거예요.
물론, 그 모음집에 유기적인 구성이 있다면 장점이 되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서 듣고 읽는 게 더 재미있다면,
나쁠거야 없죠.
하지만 그뿐이라는 거예요.

단편 소설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는 독자가
단편 소설을 하나씩 취사해서 읽는 독자보다 좋은 독자는 아닙니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이어서 읽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배치 순서에 의미를 두고 구성을 만드는 거지,
독자에게 그 이상의 요구를 해서도 안 됩니다.

난 내 소설의 중후반부에 힌트를 두고 그 힌트를 바탕으로 내가 지정한 초반부로 돌아가서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문장을 배치해놓는,
그리고 그 문장의 바뀐 의미가 결말에 영향을 주는 트릭을 즐겨 씁니다.
보통 내 독자들은 내가 박아 놓은 힌트를 보고 그 장치를 알아차리기보다는,
그냥 그 소설을 두 번째 읽을 때 그 문장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깨닫곤 하죠.
만약 내 의도를 알아보고, 처음 읽을 때 그 장치를 파악하는 독자가 있다면,
난 그 독자를 정말 예뻐 할 거예요.
(저 짓거리를 자주하다보니 중반 좀 넘으면
의식적으로 앞 부분을 다시 살피는 독자는 있긴 한데,
아직 내 힌트를 바탕으로 지정 위치를 찾아 내는 독자는 잘 없더라고요.
있더라도 일단 내게 그거 찾았다고 자랑하는 독자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독자들에게 내 소설을 그렇게 읽을 것을 요구해서는,
그렇게 읽는 독자들만이 진정한 내 독자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건 그냥 병신 머저리 새끼잖아요.
(언젠가 말했지만,
내 독자의 멍청함을 경멸하고 힐난하는 것은
내가 텍스트 외로 부차적으로 제공하는 주 서비스 중 하나이기에,
저 병신 머저리 짓에 근접하는 짓을 좀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나도 저기까지는 안 해요.)
오히려 내가 어느 독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구성을 만든 것을 자책하고
어떻게하면 더 많은 독자가 그러한 구조를 파악하고,
해석함으로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할 지를 고민해야죠.
내 소설은 이렇게 읽어야 해요! 내가 그렇게 썼잖아요!
하고 자빠져 있으면 안 돼요.

마찬가지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야 의미를 갖는 구성을
단편소설집 전체에 깔아뒀다고 해도,
독자에게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읽는 것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럴 거면 애초에 그걸 구분 지어서 단편 소설로 만들면 안 되는 거죠.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야 당연한 거죠.

앨범에 요구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음악가가 정말로 자기 앨범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들어야 의미가 있고,
그렇게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로 트랙 구분을 하면 안 되죠.
아, 트랙구분은 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타협이라고요?

어…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타협은 앨범 제작 아니었나요?
적어도 50년 전에는 분명히 그랬거든요.
자, 잊어버린 것 같아서 다시 말할게요.
단편 소설이 주예요. 소설집은 팔기 위해 만들어진 부차적인 도구예요.
소설집 전체의 구성이 훌륭하다면 좋겠지만, 그뿐이에요.
싱글 트랙이 주예요. 앨범은 팔기 위해 만들어진 부차적인 도구예요.
앨범 전체의 구성이 훌륭하다면 좋겠지만, 그뿐이에요.

독자가 작가가 의도한 대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가 의도한 지적/감정적/정서적 동요를 경험한다면,
그거야 훌륭한 독자-작가간 소통이겠죠.
하지만 독자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그 경험이 의미 없는 게 되지 않아요.
작가가 몰아 대는 대로 움직이며 그 의도 대로 작품을 보는 양 떼 같은 독자가
그렇지 않은 독자보다 좋은 독자도 아니고,
작품은 작가의 의도대로만 가치를 지니지도 않아요.

우리 세대는,
노래를 카세트 테입으로 접하고 소비해온 우리 세대는,
CD에서 트랙 역시 셔플이나 트랙 건너뛰기의 의미 밖에 없었고,
컴필레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음질 저하를 감수하며 새로 복사/녹음을 해야 했던
우리 세대는,
‘파티 셔플’을 위해 CD가 6장 올라가는 트레이가 달린 플레이어 따위를 만들어 팔고
그런 병신같은 기기를 비싸게 사서 자랑하고
저딴 게 대체 뭔 필요야 하며 신포도를 외치던 우리 세대는,
결국 앨범에 영혼이 묶여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앨범의 구성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죠.
하지만 우리조차도 단편 소설집의 구성에는 과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책은 목차 보고 필요한 부분만 취사해서 읽고 덮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너희는,
아니잖아요.
거기 얽매일 필요가 없잖아요.
자기가 원하는대로 트랙을 배치해서 노래를 들을 수가 없는 세상 따위
경험해본 적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스스로의 영혼을 앨범에 묶으려고 그 난리를 치는 거예요?

아… 연간베스트 제목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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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베스트 3개, 어펜딕스 3개로,
가제까지는 전부 뽑혀 있는데….
마땅한 제목 테마가 생각나질 않아.

일단 가제는
the rightful, the reliable, the orphan/
the bastard, the prodigal, the adopted
이렇게 여섯개로 갈라놨는데,
가제를 어떻게든 살리는 건 너무 재미없고 서로 격도 안 맞춰놓은 단어들이고…

음, 뭔가 캐릭터를 하나씩 골라서 관련 문장을 뽑아볼까?

the orphan이면… 파랑 모으기의 키라? 그런식으로?
그럼 the rightful 찾기가 쉽지 않을텐데, 이야기가 없는 캐릭터잖아.
적통이고, 위기도 없고, 갈등도 없고,
정명하게 정해진 자기 권리를
무리 없이 차지한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어…… 잠깐, 왕자와 거지의 에드워드면….. 되지 않나?
표면적으로는 위기도 없고 갈등도 없었지만,
뒤로는 온갖 상황을 겪고 돌아온 거니.
the reliable은 살림꾼 고명딸 캐릭터 널리고 널렸을 거고,
the bastard도 어렵구나.
서출로 자기 제국을 이룬, 그것도 자기 손으로 이룬 인간이라고는
원소밖에 안 떠오르는데?
동아시아 서자는 bastard보다 위계가 많이 높지만….
그래도 원소는 얼자로 추정 되기도 하니까….
어… 그럼 삼국지 영역본을 구해야 한다는 거야?
어- 그, 있지 않나? 무슨 삼국지 영한 대역이 내 리디 라이브러리에 있었던 거 같은데?

….는 없네요.
대체 이지청 삼국지는 왜 있는 거지? 언제 샀지? -_-
+ 어? 이거 리디 서재 검색은 제대로 작동을 안 하는구나.
최진열 역사 삼국지도 있고 몇 개 더 있는데 검색으론 안 뜨네?

문제의 영한대역 삼국지는
찾아보니까 e북이 한 권에 만원씩 총 20권인 미친 책이구나.
저거 세일하는 걸 보고 미친놈들인가? 저딴 걸 저 가격에 판다고?
저작권도 없는 걸?
하고 넘어간 기억이 있었나 봄.

뭐, 삼국지 영역본이야 웹에서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테니 그렇다치고,
prodigal이랑 adopted은 널리고 널렸으니 뭐.

+
the orphan은 파랑 모으기의 “she had seen the smoke in the distance as she sat with the body”에서 따서 the smoke in the distance로 하면 적당할 것 같다. 저 연기가 버림 받은, 동시에 가능성의 제약이 풀린 키라의 상징물이니 적당해.

the rightful은 왕자와 거지의 “he raised his hand with a solemnity which ill comported with his soiled and sorry aspect”에서 따서 the hand with a solemnity로 하면 적당하겠는데, 관사 맞출까? the hand with the solemnity 적당한가? a가 더 낫긴 한데, 관사를 맞춘다면 오히려 in a distance가 적당하긴 하다.

the reliable은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코델리아이긴 한데, 그…. 리어왕에 코델리아의 충실함을 상징하는 말이 나올 리가…. 어…. 죽 읽어 보고 오니 restoration hang thy medicine on my lips이 있긴 있네. 근데 진짜 리어왕은 개 ㅈ같이 못 썼구나. 솔직히 이걸 햄릿이나 맥베스랑 동렬에 두는 새끼들은 눈이 안 달리거나 머리가 안 달리거나 한 듯-_- 음… 엘리너 대시우드? 엘리너 대시우드는 좀 그렇지? reliable하긴 하지만 주동 입장이니…. 이게, 현대 극구조에서는 존재감 없이 reliable한 캐릭터는 뒤통수를 때려야 하다보니… 생각보다 없네? 근대 이전에서 해결 봐야하는데, 그럼 코델리아가 좀 아까운데? the medicine on the lips로 가는 게 맞나?

the prodigal은, 아, 이건 딱 오빠가 돌아왔다인데, prodigal son이지만, 돌아왔지만, 참회하고 돌아오면 안 돼서 오빠가 돌아왔다가 진짜 딱인데, 오빠가 돌아왔다 영역본 있나? 오, 찾았다:
“My brother’s back, with some ugly girl by his side. She had makeup on but it wasn’t enough to conceal her age. Sixteen or seventeen at the most? Then she’s only three or four years older than me. “We’re staying here for a while,” said my brother, taking off his old pointy shoes and stepping into the living room. Did they really think it’d be that easy, walking into someone else’s house? The girl hesitated and tried to hide behind my brother but he pulled her by the arm and urged her to come inside too.”
음, 이건 한국인이 번역한 거 같은데 표현이 확실히 한국적이고, 서울여대 영문학 교수하고 있는 미국인이 번역한 게 있는데….
“Oppa came back. And he brought an ugly girl with him. She was wearing make up but that couldn’t hide the fact that she was really young. Maybe seventeen or eighteen? If my guess is right, she’s no more than three or four years older than me. “We’re going to be living here for the time being.” Oppa took off his worn, pointy black shoes and stepped up onto the veranda. Entering a strange house is never easy. The girl was hiding shyly behind oppa’s back.”
기본적인 문형은 이쪽이 더 나은데, 솔직히 오빠를 oppa로 번역한 건 매우 과하다. 저 오빠는 그 오빠 아닌데….
어쨌든, 마땅한 인용문은 못 찾겠지만, “his twentieth, when he marched back into the house like a conquering general.”을 살짝 고쳐서 the march into the house가 적당하겠네.
(++
그나저나 이 사람 번역문은 단어 선택이 진짜 아쉽다. 점령군을 conquering general로 번역한 건 아무리 미국적 문화 배경에서 번역하기 어려운 감성이라고 해도 굉장히 아쉽다. 오히려 폭군, 독재자 계열 단어들이 훨씬 어울리는 게 많고, 아예 미국인 입장에서는 제3세계 쿠테타를 바라보는 감성으로 번역을 해도 더 나았을 텐데.)

the bastard은…. 아, 삼국지 영역본 찾으라고? 아, 연의 번역본은 또 원소 캐릭터도 좀 안 맞고, 묘사가 별로 마땅치 않을텐데, 관도대전때 원소 진군에 관한 묘사가 있으려나? … 아니 근데 이거 찾느라고 웹을 뒤져보는데, 코에이 삼국지 일러스트는 뭐 공공재인가? 저쪽에서도 저작자료에 코에이 일러스트 막 써대네? 아니 진짜 개웃기네. 이쪽이야 그 이미지가 워낙 확고하니까 공공재 성격이 있다고 해도 아예 틀린 말도 아니고, 코에이도 어차피 삼국지 시장 활성화의 제일 수혜자이니 공공재처럼 써대도 별 말 안 하고 있다지만, 저 동네에서는 오히려 삼국무쌍 쪽 이미지가 훨씬 우월한데도 진짜 무슨 공식 초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걸 써대네
음, 관도대전때 “the banners of his host filled the horizon”이 있네, the banners filled the horizon? the banners of the…로 갈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filled도 나쁘진 않나? 뭐, filled 정도면 전치사지. concerning도 전치사라는 세상에 filled 정도면 뭐.

the adopted은…. 어…. 이거 생각을 안 해봤네? 입양됐어. 입양됐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아. 그런데 잘해. 다른 양형제자매들과는 다르게 눈에 띄게 잘해. 근대 소설에 좀 많을 거 같은데 딱히 생각 나는게 없냐, 왜? 어… 잠깐, 예수? 어!? 아니… 어, 그건 좀 너무 갔고. 아, 빨간머리 앤? 그렇지, 막 잘하는 것도 아니고 수다스럽고 개념 연결이 신기한 방식으로 잘하는 거라서 테마에 잘 맞네. 빨간머리앤은 원서를 내가 가지고 있겠지? 찾아봐야겠네. 아니다, 이거 구텐베르크에 있지? 몽고메리가 1960년 전에 죽었겠지? 구텐베르크에… 있네. 구텐베르크로 찾아봅시다. 책 뒤지긴 귀찮아. 앤 셜리 양이 처음 등장하는 첫 머리나, 처음 학교 가는 날에서 찾아봐야겠지? 아우 귀찮아. 이거 원문을 제일 모르는 책이라서 어디에 마땅한 구문이 있을 지 감이 안 잡히긴 하네. 어우, 생각보다 앤이 늦게 등장하는구나. 일단 번역본으로 훑어야겠다. 번역본도 어딘가 있겠지? 리디에 어디 세트로 사 놓은 거 하나쯤은 있을 거야. 어우 시리즈 풀셋이 있네? 저걸 왜 샀지?
아. 앞부분을 쭉 훑어보고 오니, 이건, the name with an E네. 이거 말고 다른 걸 꼽는다는 건 말이 안 되네.

자 그럼,
the Best of 2023 A: the Smoke in the Distance
the Best of 2023 B: the Hand with a Solemnity
the Best of 2023 C: the Medicine on the Lips
the Best of 2023 A appendix: the Name with an E
the Best of 2023 B appendix: the Banners filled the Horizon
the Best of 2023 C appendix: the March into the House
로 결정.

++
음, 프로디걸을 베스트로 올리고 릴라이어블을 어펜딕스로 내리는 게 맞나?
완성도는 릴라이어블이 더 높은데, 재밌기는 프로디걸이 더 재밌어서…

야숨을 넘기는커녕 근접도 못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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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숨 때는 지상 탐험이 당연한 거였다.
어떻게든 스태 관리해가면서 이 산을 넘어가면 뭐가 있을까가 궁금했고
코로그가 있을 법한 곳이면 뭘 하라는 걸까 몇 번이고 둘러 봤다.
그러다보니 각종 재료와 코로그 씨앗은 알아서 모이는 거였지,
화살과 화살 사기 위한 루피 부족에 허덕여서
가는 길에 있는 나물-_-들을 필요이상으로 꼼꼼하게 뜯어가긴 했지만
단 한 번도 당장 쓰기 위한 게 아닌 재료를 따로 시간 갈라 파밍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왕눈에서 그 수백시간 파먹은 무대를 다시 돌라하니 좀 난감하다.
여기저기 어느 장소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보는 건 처음에는 잠깐 재미있지만
많이 변한 것도 없고 곧 빠르게 식상해지지.
하늘섬은 재미있지만 좁고 듬성듬성해.
지저는 안 그래도 흥미롭지 않은데 심지어 지형도 상하반전에
종종 아예 막혀서 넘어갈 방법이 없다.
어떤 물이건 어떤 산이건 어떻게든 뭐든 쥐어짜서 넘을 수 있었던
야숨의 지상탐험과는 비교할 가치도 없지.
지나치게 강력한 조나우 기어, 아니 딱 잘라서 로켓과 말뚝의 존재도 문제다
로켓처럼 단순한 매커니즘이 지나치게 강력하거나,
말뚝처럼 지나치게 복잡한 매커니즘이 작용하는데
그 사용처가 한정되지 않는 기어는 만들어서는 안 됐다.
로켓의 추진력은 현재의 절반 정도가 적당하고,
말뚝도 지지력 상한이 낮아야 했어.
높이로 제한을 두면 로켓 타고 올라가고,
손에 제한을 두면 말뚝 박아서 붙여놓는데
어떻게 탐험로를 짠단 말인가?

재료? 날 잡아서 파밍해야함.
코로그? 지상 탐험을 안 하니 공유 맵에서 정보 찾아서 일일이 잡고 다녀야 함.
내가 발견한 것도 아니니 새로운 기믹이 나와도 이건 뭘까 하는 흥미도 없음.

게임은 잘 만들었고, 즐길거리는 많을 것 같아.
하지만 이게 등산 게임이냐고 욕하면서도 기꺼이 절벽에 매달리게 만들던
탐험의 매력은 사라져버렸고,
그 많은 즐길거리를 즐기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야숨은 게임 불감증을 치료해준 게임이었다.
그런데 왕눈은 게임 불감증을 안겨주고 있어.
메인 다 밀고 나니 그냥 날마다 게임켜서 아미보 찍고
지상에 나와 있는 용 확인해서 비늘 뜯고
워프 깔아놓은 조나니움 광산에서 조나니움 캐고
정해놓은 퀘스트 하나와 그 지역 코로그 털고
다 쓴 중요 무기 있으면 고론 가서 고치고
뭐 더 할 거 없나 둘러보다 붉은달이나 돌려놓고 끄는 걸 반복한다.

이 과정이 그냥 너무 와우 일퀘 하는 느낌이야.
그런데 이제 레이드와 커뮤니티가 없는 와우인 거지.
야숨은 날마다 오늘은 어딜가볼까, 거길 가려면 뭐뭐를 준비해야할까,
필요한 재료는 얼마나 모여있을까…….하며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웠는데,
생각해보면 이건 일퀘만도 못하다.
일퀘는 적어도 이걸 몇 바퀴 돌리면 뭘 새로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라도 있지.

지저는 없는 게 더 나았을 거고,
하늘섬이 조망탑 높이에서 접근 불가능한 높이로
1-2층 더 쌓여 있었다면 재미있었을 거다.
이게 뭐 하늘섬 3만원 지저 3만원 추가 스토리 3만원
야숨의 DLC였다면 오히려 만족했겠지.
하지만 야숨의 후속작으로는…

결국 문제는 게임의 주무대가 바뀌지 않았다는 거다.
혹은, 스위치에는 퀵 리쥼이 없다는 거다.

평점은 애매하다. 정수부는 8점이고, 소수부는 마이너스인데,
이게 7포인터냐면 그건 또 아니다.
8.5 – 0.3 정도가 적당한 게임.
그냥 8= 주는 게 맞는 것도 같다.
그런데 그러자면 난 야숨에 9플랫을 줬는데, 이게 8플랫이면
이 실망감이 전달이 안 된다.
9-1.0도 말이 안 되고…
음.
9-1.3이 맞겠다.
야숨을 고려하지 않은 정수부 9점, 야숨을 고려한 소수부 -1.3
아. 이것도 과해. ‘야숨을 고려하지 않은 정수부’ 옵션 달 거면
저렇게 과하게 매길 필요 없어.
그래서 최종 평점은…. 9-0.8입니다.

브로드웨이HD 연말 할인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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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러게
지난 몇 년 간, 한국에 안 들어온 뮤지컬들 보려면
저거 끊기는 해야할 것 같은데?
하면서 타이틀 목록을 죽 훑어 봤다.

음…
어…
그…

네?

250개요?
전부 250개?
지금 서비스 5년차인데 250개?
시작할때 200개로 humble하게 시작한다고 안 했나?
지난 한 달 간 추가된 타이틀이 2개?
아니 잠깐?
저 둘 중에 하나는 2017년작 뮤지컬 메슈가넛크래커고,
다른 하나는 1967년작 영화 크루시블이야?
………
이게 뭐지?
근데 할인해서 1년에 100달러를 받겠다고요?

미친놈들인가?
타이틀 목록 쭉 훑어보면서,
이걸 저 가격에 파는 놈들이 미친 놈들인가,
이 가격에 사는 놈들이 미친 놈들인가 심히 헷갈리는데?

아니 무슨, 브로드웨이 공연 동시 업로드 같은 건 바라지도 않고,
놓친 공연 챙겨 볼 수도 없는 수준의
성기디 성긴 타이틀 확보에,
이건 뭐 같은 연극/뮤지컬 캐스트 구분도 안 하고 그냥 냅다 서너개씩 올려대질 않나.
아니 그…….
이걸 대체 뭐에 쓰려고 구독하지?

아니 그, 이 정도면 그냥 공연 블루레이 구매보다 효율이 안 나오는데?
저게 대체 무슨 시장성이 있어서 성립할 수 있냐고?
저 돈 주고 누가 봐 대체?

글쎄, 이래서야 불멸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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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불멸한다.
가장 모독적이고, 가장 선정적이고,
그에 앞서 가장 뻔한 예술만이 불멸한다.
그 안에 담긴 가치와는 아무 관계 없이.
이에 대해 논하라.

언뜻 고교수준 논술 평가 논제 제시문처럼 보이는 이 문장은,
샘 발로우의 여정을 지금껏 따라온 사람들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게도,
샘 발로우의 신작 이모탈리티의 주제문입니다.
아, 물론, ‘언뜻 논술 평가 제시문처럼 보이는’ 거지,
정말로 논술 평가 제시문 같지는 않죠.
일반적으로 우리가 논술 평가 문제를 낼 때는
훨씬 좁은 영역에서 논술을 하도록 유도하거든요.
저렇게 모호하게 가치판단이 어려운 단서들을 달지도 않고요.
뭐, 그건 그렇게 해야 채점하기 쉽기 때문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네, 이건 지나치게 넓은 논제입니다.
저 논제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예술이 무엇인가부터 논하기 시작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예술의 내재 가치가 무엇인가부터 논하기 시작할 테고,
어떤 사람들은 늘 그렇듯이, 돈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저 논제는 정답이 있기는커녕 논의점조차 하나로 모이지 않는 질문이 됩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사람과 예술을 파는 법에 대해 논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논쟁이 성립할 수 있나요?
저 논제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조차 성립하지 않기에,
이 게임은, 샘 발로우의 게임이 늘 그렇듯, 지독하게도 개인적인 게임이 됩니다.

샘 발로우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의 주인공을 플레이하지 말고,
스스로 게임의 주인공이 되기를 요구했습니다.
게임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에서 형사수첩을 펼치고 (물론 나는 실제로 종이에 기록하기보다는
모니터 구석 구석에 스티커 노트를 붙이는 쪽을 선호하지만 어쨌든)
게임이 보여주는 정보를 꼼꼼히 기록하면서 정리하고 추론하여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게임을 만들었죠.
그리고 이 게임은, 기존의 샘 발로우 문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단순히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둘러쳐진 혼란스러운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저 게임의 주제문을 찾는 것을
게임의 첫 단계, 혹은 첫 두 단계로 만들어 놓았거든요.
그렇기에 게임의 이 ‘개인적인’ 속성은 전작들보다 훨씬 강화되었습니다.
전작은 그래도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끼리 의미 있는 논의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그렇지 않아요.
당장 내가 저게 이 게임의 주제문이라고 선언하면
‘마리사의 영화들이 개봉되지 않은 이유를 찾는 게임이 아니었어?’
혹은 ‘불멸자와 다른존재의 뒷 이야기를 파악하는 게임이 아니었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건 예술, 좀 더 좁게는 이야기의 불멸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더럽다고 물로 씻겨도, 불온하다 십자가에 못박아도 살아 남습니다.
불에 태우는 것은 어느 정도 유효해 보이지만,
인류사의 숱한 분서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그 책을 태우던 어떤 권위들보다도 오래 살아 남았습니다.
기껏해야 이야기와 비슷한 불멸성을 가진 권위는 종교 정도인데,
샘 발로우는 이 게임 전체에서 종교도 결국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독자의 머릿속에 욱여 넣습니다.
(사실 이 ‘종교도 결국 이야기다’를 공리로 삼는 방식은
이 게임 안에서 가장 세련되지 못한 부분입니다.
정말로 저걸 공리로 삼으려면 훨씬 더 뻔뻔했어야 합니다.
‘이게 종교 모독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조심스럽지만
누구누구는 종교도 결국 이야기라고 하고,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가 아니라
‘종교는 이야기다, 이 당연한 사실을
왜 언급해야하는지조차 모르겠다’가 됐어야 했어요.)

이모탈리티는 그 이야기의 불멸성에 관한 다양한 논점을
이 불멸자의 삶이라는 은유를 통해서 독자에게 던집니다.
예술은 독자 없이 성립, 존재할 수 없는가?
없다면, 그 의존도는 얼마나 되는가?
예술은 독자를 선도하는가, 독자가 예술을 이끌어 내는가?
예술이 불멸의 가치를 만드는가? 독자가 불멸의 예술을 만드는가?
예술성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내재된 가치란 무엇이고,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내재 가치에 존재 의미가 있는가?
표준적인 대중이 좋은 독자인가,
예술의 숨겨진 가치를 잘 알아보는 것이 좋은 독자인가?
뭐, 표면만 훑어도 끝이 없군요.

문제는, 저 질문들의 깊이가 전적으로
플레이어 개인의 예술관과 철학에 의존한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지금 위에 꼽아놓은 표면적인 질문의 아래층으로는 내려 들어가지도 못할 겁니다.
당장 저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는 것만도
십수년간 꾸준히 저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자신의 세계관, 예술관, 가치관과 현실 세계의 충돌을
조정하고 또 조정한 뒤에야 할 수 있는 일인데,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문화예술계 밥을 10년 넘게 빨아 먹고 있는 불한당들이거나,
10년 넘게 밥벌이 없이도 어떻겐가 살아 남은 날백수 무뢰배들이거나,
평생 밥 굶는 걸 걱정해본 적 없는 유한계급 기생충들이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데)
저 아래에 놓인 질문들을 던지기 위해서는
이 표면적인 질문에 먼저 답을 달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렇죠, 샘 발로우는 언제나 플레이어의 세계관 안에서
완전히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개인적인 게임을 만들어왔습니다.
당장 허 스토리부터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아서
그냥 첫 영상을 보고 게임을 끄는 것’도 게임의 엔딩으로 취급했죠.
이모탈리티 역시 마리사 맥거핀에 낚여서
그냥 영상들만 찾아다니며 마리사의 진상을 추적하든,
불멸자 맥거핀에 낚여서
백워드 트래킹만 열심히 하며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헤매든,
이 대체 무슨 의미 없는 헛소리냐 하며 바로 게임을 끄든,
플레이어 자신의 예술관을 보강하고 표명하는 게임플레이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모탈리티가 무슨 게임인가,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은,
누군가 짧게 요약해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니게 됩니다.
더 정확하게는, 플레이어 본인이 느끼고 해석한 그대로의 게임이 되어
전달할 수 없게됩니다.
누누이 이 게임이 지독하게 개인적인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그냥 헛소리만 잔뜩 늘어놓는 똥겜 같다면,
맞습니다, 그런 게임이에요.
마리사의 이야기를 추적하다 길을 잃게 되는 느슨하고 불친절한 게임 같다면,
맞습니다, 그런 게임이에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예술적이고 어려운 게임 같다면,
맞습니다, 그런 게임이에요.
인류 역사에 남을 완벽한 예술작품인 것 같다면………..어….. 어….. 어……..
아니 솔직히 그건 아닌 것 같지 않아요?

이모탈리티가 요구하는 게임플레이는,
이 게임을 접하고, 자신의 예술관을 되돌아보고,
변경할 곳이 있으면 변경하여, 다시 정립하는 것입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마리사의 배우 커리어가 왜 그렇게 엉망이었는지 그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고,
불멸자와 다른 존재가 어떻게 존재해 왔는지
세부사항을 파헤칠 필요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앞서 주제문이라고 뽑아놓은 논제에 참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당연히, 굳이 찾지 않을, 파헤치지 않을, 참여하지 않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 나아가서 보고 싶은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고 싶은 그대로 받아 들이라는 것이 이 게임의 요구입니다.

다시, 조금 좁은 영역으로 되돌아와서,
이 게임은 그 수행이 깔끔한 게임은 아닙니다.
저런 포스트모던한 게임플레이를 목표로 두었다면,
좀 더 세련되이 다듬어야 할 부분이 여럿 있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을 조명하는 것은
1972년에 퐁의 비디오 게임으로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우린 저걸 어떻게 세련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런 게임을 만들어본 적도, 플레이해 본 적도 없어서 제대로 지적할 수가 없어요.
허 스토리가 나왔던 2015년, 우리는 이게 1995년에 만들 수 있었던 게임인데
20년이나 늦게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쯤이면 우리가
제대로된 허 스토리 비평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허 스토리와 비슷한 시도라도 한 게임은
스티븐의 소시지 롤과 파이어 정도가 고작이고,
(폴른 오더의 ‘플레이어가 플레잉 캐릭터를 돌아서게 조작하는 게 아닌,
플레이어 본인이 돌아설 때 서사가 반전되는’
미묘한 텔링 구조 역시 ‘시도는 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대규모 서사가 필요한 중대형 게임의 한계라고 해도
그렇게 좁은 영역의 텔링 구조를 살짝 꼬아놓은 것을
이런 플레이어가 등장인물에게 이입하지 않고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시도라고 말하기는 어렵네요.
사실 파이어는 정말 말도 안되는 대규모 서사에서
파리한 페이(혹은 시시한 셰이, 혹은 헝클어진 케이, 혹은…)의 해방이라는 과제
하나만으로 저걸 성공시켰는데도,
결국 독자가 게임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 때문에 그저 시도라고 말하는데,
폴른 오더 정도의 독립장치를 시도라고 말하기는 뭐하죠.)
샘 발로우는 저 멀리 달려가서 더욱 더 비평할 수 없는 게임을 안겨주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게임이었고,
인류 모두가 한 번은 플레이해 볼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임은 아닌 것 같고, 플레이 해 보고 싶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애석하게도:
(그 누구도 업적이나 트로피나 게이머 점수를 챙겨주지는 않겠지만)
당신은 이미 이 게임을 한 번 플레이한 겁니다.
어디가서든 거리낄 것 없이
‘이모탈리티? 나 그 게임 엔딩 봤는데 나랑 안 맞더라’라고 말해도 됩니다.
분명히, 그 역시 이모탈리티를 접하고 나서
자신의 예술관을 다시 정립하는 행동을 한 거니까요.

이렇게 이 게임에 관한 정보를 대충 훑어보고
‘난 이런 게임 딱히 하고 싶지 않아’라고 결정하는 것조차
게임이 요구하는 궁극적 게임플레이의 완성이라는 것이,
이 게임을 완성시킵니다.
쉬이 무의미해질 수 있는, 대중과 지나치게 괴리된 포스트모더니즘의 함정
―― 모든 독자의 해석을 존중하지만, 어떤 독자도 존재하지 않는 ――에서
스스로 구해내 존재 자체를 의미 있게 만듭니다.

+
사실 이 게임의 완성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게임패스 데이 원 발매 계약입니다.
허 스토리나 텔링 라이스와 달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뭔 게임인지라도 알아볼까?’ 하는 영역에 발을 들인
결정적인 이유가
게임패스 데이 원 발매이니까요.

“저딴 노래를 대체 왜 듣는 거지?”

Categories 플린스의 뒷이야기Posted on

내가 레나 마를린과 후버포닉과 태러 맥레인과 피오나 애플을 듣던 그 99년.
내 동급생들은 모두 확연히 다른, 그리고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S는 신해철을 중심으로 한국 얼터너티브 락을 들었다.
우린 애초에 서로 듣는 노래를 경멸했다;
C는 클래식만 들었다.
특히 클래식 악기의 위대함에 대해서 나와 가장 말이 통했지만,
결코 말이 통하지 않았다;
K(not that K)는 메탈리카를 숭앙했다.
그리고 역시 서로 듣는 노래를 경멸했다;
T는 린킨 팍을 중심으로 오프스프링이나…
그 갑자기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90년대 말에 유명했던 얼터너티브 락, funk 밴드를 즐겨 들었다.
대체로 서로 우호적인 척 했지만 사실은 서로 경멸했다;
U는 패닉이나 자우림 같은 국내 얼터너티브 영역과
엔싱크 따위의 주류 팝을 들었다.
나는 이적이 좋은 음악가라는 점에,
U는 레나 마를린이 훌륭한 작곡가라는 점에 동의 했다.
그 외에는 서로 듣는 노래를 경멸했다;
P는 하드코어와 인더스트리얼 테크노를 들었다.
이렌 레펜의 나타스 프린세서를 극찬했고,
나와는 좀 극단적인 반대성향에서 비롯하는 유사점이 있어서
불가침 조약 같은 것을 맺었다.
“나는 네가 듣는 노래의 ㅈ같음을 언급하지 않을 테니
너희 장르에서 리드믹한/멜로딕한 노래가 나오면 나한테 가져와 주렴.”

이건 음반을 사서 들어야 했던,
그리고 등하교와 자습 시간 동안 하루에 다섯 시간씩 노래를 들어야 했던
우리 세대의 굴레였다.

우린 백 장을 채우지는 못하는 정도의, 직접 산 음반을,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CD가 긁혀 인식되지 않을 때까지 들었다.

장르가 의미 있었고,
음악가의 브랜드가 의미 있었다.
우린 앨범을 살 때 거기에 어떤 노래가 들어있는지를 듣지 못한채 예측해야 했고,
영화표 두 장과 고등학생 사정에 당연한 3~5천원짜리 저녁식사 두 끼.
즉 한 주말 데이트 비용에 상당하는 돈을 갈라 산 CD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음에 들게 될 때까지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취향을 갖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남의 취향을 경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린 각자의 이어폰 안에 구분되어 갇힌 채로
오직 스스로의 관점과 대면할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모두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지만,
또한 모두가 그 자신의 관점 안에 갇혀 다들 아래로만 깊이 파고 내려갔다.
그렇기에 서로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었지.

우린 서로 노래를 추천하지 않았다.
대충 대학 신입생 때까지는 그런 일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서로 경멸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누구도 서로 노래를 추천하지 않았다.
괜히 감정 쌓일 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남이 추천하는 노래는 진지하게 들어보지도 않았지.

내가 이 블로그에서 정말 거침 없이 노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그런 세대였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이 지지리도 소설을 안 읽는 아이들에게,
내가 보르헤스가 대단하다고 말하면 보르헤스를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애들도,
그 픽션들과 알렙은커녕 불한당들의 세계사가 뭔 얘기를 하고 있는지
감 잡지 못한 애들도
보르헤스를 읽어보고는 ‘어려워서 이해를 못하겠어’라고 말했다.
결코 ‘대체 이딴 글에 뭔 의미가 있다고?’라며 경멸하지 않았지.
그렇기에 내 세계가 완성된 이후로
난 어디에서도 소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누가 소설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 때나 윌리스나 김영하 정도의,
타임킬러이면서도 타임킬러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수다쟁이들을 집어내 주는 것 정도 말고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는 달랐다:
하루 다섯시간씩 노래를 듣는 훈련을 거쳐온 모두가 전문가였고,
모두가 서로의 취향을 경멸했다.
그렇기에 난 노래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늘어 놓아도
누군가 거기에 영향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저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를 모르던 아이들이
보르헤스를 읽게 만든 건 좀 미안하다.
지금은, 미친듯한 양의 쓰레기 정보가 인터넷을 누비고 다니는 지금은,
누구나 바벨의 도서관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 안에 모든 정보가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안에서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하지만 그 때 저 아이들은 인터넷을 충분히 접한 상태가 아니었고,
인터넷도 가까스로 하이퍼텍스트의 틀을 잡아가고 있던 시대였지.)

그리고 저 아이들을 마주하고는, 당혹해 하는 거지:
학창시절의 하루 다섯 시간을 노래를 듣는데 낭비하지 않는 아이들.
자기 취향을 모르고, 자기 취향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아이들.
그리고 메타 크리티시즘의 압제 아래
자기 취향을 만들지도 못하는 아이들.
나아가서, 심지어는,
이 블로그에서 자기 취향의 초석을 빌려다 깔고 자빠진 아이들.

난 저게 너무나 끔찍해서 참을 수가 없는데,
그 모든 게 저 아이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 세대가 너무나 뒤틀려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다만,
그저 다만,
더 이상 장르가 필요 없는 세상,
음악가 브랜드가 필요 없는 세상,
스포티파이의 자동장치가 큐레이팅을 해주는 세상에서;
왜 저 아이들이 평론가 따위의 말에,
무엇보다도 나 따위의 말에,
의미를 두는지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

알고는 있다:
우리의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소리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려는 시도가,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상을 불러왔다는 것은.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에서 열심히 역설했던 그 ‘모든 정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우리가 세상을 이 모양 이 꼴로 망쳐놨다는 것은.
저 아이들은 그저 그 우리가 저지른 죄악의 산물이라는 것은.

하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다만,

+
근데 지금 되새겨보니까…
나 하드코어 듣는 애들이랑 되게 우호적이었네?
메탈 듣는 애들이랑 진짜 경멸이 뭔지 재정의하는 감정을 주고 받은 반면…
하드코어는 서로 그냥 아 저런 것도 노래구나 재밌네. 하면서 넘어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