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단편 소설은 개별로 읽어서는 안 되고
한 권의 단편 소설집 전체로만 읽어야 하고,
그렇기에 응당 단편 소설집은 그 전체에 유기적인 구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개개의 단편 소설이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느냐보다,
소설집 전체의 유기적인 구성이 중요하다고 하죠.
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러냐고요?
대중음악 평론 판에 널리고 널린 게 그런 사람이잖아요.
앨범 완성도가 싱글 트랙 완성도보다 중요하다는 사람들.
앨범과 단편 소설집의 존재 이유는 똑같습니다.
원래 플레이타임 2분이었던 실린더 하나에 꾸역꾸역 늘려 들어가던 3-4분짜리 노래,
손바닥만한 소책자로 엮여 들어가던 5천 단어 남짓의 소설이
가판대에서 팔리던 19세기 말 20세기초의 혼란이 가라앉고,
30분 넘는 플레이타임을 욱여 넣는 게 가능해진 레코드 플레이트들과
2-4만 단어 수준의 중편 소설 분량 페이퍼백 제본이 출판의 기본이 되면서
팔기 마땅치 않아진, 하지만 여전히 생산 되고 있던 싱글 트랙 노래와 단편 소설을
모아서 상품으로 만든 거예요.
물론, 그 모음집에 유기적인 구성이 있다면 장점이 되겠죠.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서 듣고 읽는 게 더 재미있다면,
나쁠거야 없죠.
하지만 그뿐이라는 거예요.
단편 소설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는 독자가
단편 소설을 하나씩 취사해서 읽는 독자보다 좋은 독자는 아닙니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이어서 읽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배치 순서에 의미를 두고 구성을 만드는 거지,
독자에게 그 이상의 요구를 해서도 안 됩니다.
난 내 소설의 중후반부에 힌트를 두고 그 힌트를 바탕으로 내가 지정한 초반부로 돌아가서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문장을 배치해놓는,
그리고 그 문장의 바뀐 의미가 결말에 영향을 주는 트릭을 즐겨 씁니다.
보통 내 독자들은 내가 박아 놓은 힌트를 보고 그 장치를 알아차리기보다는,
그냥 그 소설을 두 번째 읽을 때 그 문장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깨닫곤 하죠.
만약 내 의도를 알아보고, 처음 읽을 때 그 장치를 파악하는 독자가 있다면,
난 그 독자를 정말 예뻐 할 거예요.
(저 짓거리를 자주하다보니 중반 좀 넘으면
의식적으로 앞 부분을 다시 살피는 독자는 있긴 한데,
아직 내 힌트를 바탕으로 지정 위치를 찾아 내는 독자는 잘 없더라고요.
있더라도 일단 내게 그거 찾았다고 자랑하는 독자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독자들에게 내 소설을 그렇게 읽을 것을 요구해서는,
그렇게 읽는 독자들만이 진정한 내 독자라고 주장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건 그냥 병신 머저리 새끼잖아요.
(언젠가 말했지만,
내 독자의 멍청함을 경멸하고 힐난하는 것은
내가 텍스트 외로 부차적으로 제공하는 주 서비스 중 하나이기에,
저 병신 머저리 짓에 근접하는 짓을 좀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나도 저기까지는 안 해요.)
오히려 내가 어느 독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구성을 만든 것을 자책하고
어떻게하면 더 많은 독자가 그러한 구조를 파악하고,
해석함으로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할 지를 고민해야죠.
내 소설은 이렇게 읽어야 해요! 내가 그렇게 썼잖아요!
하고 자빠져 있으면 안 돼요.
마찬가지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야 의미를 갖는 구성을
단편소설집 전체에 깔아뒀다고 해도,
독자에게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읽는 것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럴 거면 애초에 그걸 구분 지어서 단편 소설로 만들면 안 되는 거죠.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야 당연한 거죠.
앨범에 요구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음악가가 정말로 자기 앨범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들어야 의미가 있고,
그렇게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로 트랙 구분을 하면 안 되죠.
아, 트랙구분은 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타협이라고요?
어…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타협은 앨범 제작 아니었나요?
적어도 50년 전에는 분명히 그랬거든요.
자, 잊어버린 것 같아서 다시 말할게요.
단편 소설이 주예요. 소설집은 팔기 위해 만들어진 부차적인 도구예요.
소설집 전체의 구성이 훌륭하다면 좋겠지만, 그뿐이에요.
싱글 트랙이 주예요. 앨범은 팔기 위해 만들어진 부차적인 도구예요.
앨범 전체의 구성이 훌륭하다면 좋겠지만, 그뿐이에요.
독자가 작가가 의도한 대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가 의도한 지적/감정적/정서적 동요를 경험한다면,
그거야 훌륭한 독자-작가간 소통이겠죠.
하지만 독자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그 경험이 의미 없는 게 되지 않아요.
작가가 몰아 대는 대로 움직이며 그 의도 대로 작품을 보는 양 떼 같은 독자가
그렇지 않은 독자보다 좋은 독자도 아니고,
작품은 작가의 의도대로만 가치를 지니지도 않아요.
우리 세대는,
노래를 카세트 테입으로 접하고 소비해온 우리 세대는,
CD에서 트랙 역시 셔플이나 트랙 건너뛰기의 의미 밖에 없었고,
컴필레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음질 저하를 감수하며 새로 복사/녹음을 해야 했던
우리 세대는,
‘파티 셔플’을 위해 CD가 6장 올라가는 트레이가 달린 플레이어 따위를 만들어 팔고
그런 병신같은 기기를 비싸게 사서 자랑하고
저딴 게 대체 뭔 필요야 하며 신포도를 외치던 우리 세대는,
결국 앨범에 영혼이 묶여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앨범의 구성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죠.
하지만 우리조차도 단편 소설집의 구성에는 과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책은 목차 보고 필요한 부분만 취사해서 읽고 덮는데 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너희는,
아니잖아요.
거기 얽매일 필요가 없잖아요.
자기가 원하는대로 트랙을 배치해서 노래를 들을 수가 없는 세상 따위
경험해본 적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스스로의 영혼을 앨범에 묶으려고 그 난리를 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