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동안 쌓인 목록 처리하다 이 안티포크인듯 안티포크 아닌듯 개 의아한 노래가 확 눈길을 끌어서 훑어 봤는데… 누구세요? 왜 내 목록에 있죠? 어… 리투아니아 가수라고? 그럼 저게 의도된 안티포크가 아니라 그냥 영어 강세가 개판인 걸지도….
아! 이 노래였구나. 얘 기억 나… 작년 초에 저 노래 발견 하고 핀 업 해놓고는 작년에 낸 싱글들은 저기에 못미쳐서 아쉬워 했던 애였어. 음 그런데 좀 뭐랄까 내가 이 아이를 핀업하면서 기대했던 건 저 기타랑 같이 보컬 당기면서 만들어내는 괴이한 박자감각의 안티포크였는데….
지금은 뭐랄까 그 향만 남았네.
아니, 이번 노래도 좋긴 한데, 이것도 흥미롭긴 한데, 저 데뷔 곡 만큼은 아니야. 이번 노래가 확실히 화려해서 눈길은 확 끌기는 하는데… 저 미묘한 박자 놀음 같지는 않지. 저건 좀 아쉬운데….
핍 블롬의 세 번쨰 앨범에 많은 것을 기대했다하면 거짓말이겠죠. 물론 Is This Love?은 훌륭했지만, 훌륭한 싱글 내놓고 앨범 꼴아 박는건 핍의 주특기였는걸요.
앨범 전체를 꿰뚫는 스타일이나 주제가 없다는 건 문제가 이닐 정도로, 핍은 앨범을 쓸데 없이 자주, 쓸데 없이 길게 만들었어요. 퀄리티 컨트롤이 전혀 안 되는데, 노래를 찍어내면 뭐하나, 그거 찍히는 대로 10곡씩 끊어서 앨범이랍시고 묶는 건 대체 왜인가…. 싶었죠.
앨범은 원래 그렇게 찍는 거였긴 했죠. 50년대엔 말이에요. 지금에 와서 70년 전 감각으로 앨범을 찍을 거면 차라리….
그런데, 정말로 삼세번은 마법인지, 이 핍 블롬의 세 번쨰 앨범은 핍이 지금까지 싱글에서 보여주던 매력을 잘 갈무리해 담아내고 있어요.
스타일이 하나로 잘 일치하기까지는 않더라도, 많이 개선 됐죠. 특히 기존 앨범에서는 Taxi Driver나 Daddy Issue 같은 핵심 싱글에는 넘쳐 흐르는 장난기가 다른 노래에선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게 제대로 해소 됐어요. Tiger – Red – Kiss Me by the Candlelight의 3연타는 단순히 장난기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진심인 척 농담인 척 구분하기 힘들게 만드는 밀당이 전에 없던 긴장감을 만들어 주죠.
나아가서, 이 긴장감이 앨범 전체를 ‘듣기 즐거운’, 재미 있는 앨범으로 만들어줘요. I Can Be Your Man 같은 노래는 스탠덜론으로는 뭔가 싶은 밋밋하고 재미없는단순한 노래죠. (+ 생각해보니 ‘재미없는’은 잘못된 단어 선택이에요. 재미없진 않아요. 전달하는 메시지에 비해서 너무 길고 비어 있다 싶지, 스탠덜론으로도 재미 없지는 않죠.) 하지만 저 T-R-K 3연타 뒤에 붙은 이 노래는 ‘앞에 한 거 다 농담인 거 알잖아’라고 말함으로써 그 의도를 더 헷갈리게 만드는 노래예요. 정말 순수한 농담이라면 저런 말을 덧붙이는 게 더 이상해지니까요.
그래요, ‘듣기 즐거운’은 이 앨범에서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핍 블롬의 첫 두 앨범은, 그리고 그 이전의 EP들조차, 그 디스크들은 죄다 숙제처럼 느껴졌어요. 아, 10 트랙 채워야 하는데….하는 강박에 그냥 막 쥐어짜는 게 그저 한 발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었죠.
하지만 이 앨범은 그렇지 않습니다. 트랙들은 전부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누구도 억지로 하고 있지 않아요. 대단히 새로운 시도도 없고, 잘 깎인 완벽한 성취가 있지도 않지만, 다들 왁자지껄 재미있게 놀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생기는 거죠. 그리고 그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에 Is This Love?을 한 발 당겨 배치해 놓은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에요. 내가 저 싱글이 나왔을 떄 먼저 듣지 않았다면, ‘아, 이게 다 구나, 대단한 건 없구나’ 하고 있다 제대로 한 방 먹었을 거예요.
맞아요, 사실 잘 뜯어 보면 결국 Is This Love?과 Tiger 정도를 제외하면 별 것 없잖아? 라고 할 수도 있어요. 기술적으로 잘 만든 앨범은 결코 아니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을, 해선 안 되는 것을 한 앨범도 아니고요. 하지만 난 이 42분간의 승선 동안 정말로 즐거웠어요. 앞으로 대여섯번 더 탈 의향도 있어요. 컴플먼트 시스템이 제대로 체계를 잡은 이후로 내가 반복해서 돌리는 앨범은 몇 개 되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요? 아, 그건 7+1.5점이어야 할 이유지, 8+0.8점일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세상엔 정수부 숫자를 바꿔야할만큼 가치 있는 즐거움도 있어요.
6+0.1 귀찮아서 rgf 카드는 생략합니다. 연말에 시간이 남으면 만들어 달 수도 있겠네요.
유리장이가 지난 2013년에 내놓은 소포모어 앨범에 대해 내가 했던 평은 간단했습니다:
유리장이는 새로운 걸 만들어낼 지성도 경험도 없고, 모종삽으로 빈 모래상자의 모래를 퍼서 스카이스크래퍼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멍청이다. 적어도, 그 빈 모래상자라도 채우지 않고는 어떤 의미 있는 시도도 하지 못할 거다. 소포모어라는 게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게 변명이 되려면 그 모래상자에 단 한 톨의 모래라도 들어있었던 적이 있어야만 한다.
10년이 지났고, 난 내가 저런 평을 했다는 것도 잊어 버렸죠. 아니, 유리장이가, 캐머런 매저로가 누군지조차 잊어 버렸어요. 사실, 저 0말1초의 소위 아트팝 음악가 중에 기억 씩이나 해줘야할 사람이 몇이나 있었나요? 그리고 이 앨범이 떨어졌습니다. 난 ㅅㅂ 이건 누구야? 하고 이번 주의 마지막 앨범으로 이 앨범을 걸었죠.
훌륭한 앨범이었나요? 아니요. 좋은 앨범이었나요? 글쎄요. 그럼 굳이 이 간이 리뷰를 쓰는 이유가 뭐죠? 평점도 6.1점 정도 주면서?
글쎼요. 명확한 건, 내가 유리장이에게 했던 말 하나는 물러야겠다는 겁니다. 유리장이는 더 이상 그 빈 모래상자에 모래 한 톨 채워 본 적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10년의 세월과 함께, 배운 게 있긴 있는 모양이죠. 뭔가 의미 있는 시도가 여럿 보여요. 게다가 Easy는 흥미롭기까지 하고, Drift은 하고자하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대체 83년생 15년차 음악가한테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는 하지만, 뭔가 가능성이 보여요.
사실 이 간이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놀라웠던 게, 앨범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트랙이 Vine까지 딱 3개 트랙이었는데, 그 셋이 다 싱글이었다는 거였죠.
보통 이 정도로 나와 지향점이 안 맞는 음악가는 싱글 끊는 감각도 많이 어긋나는데, 이건 왜?
어쨌든, 난 이게 케잇 하브너뷕이 &i에서 보여준 것의 마이너 카피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내가 보는 가능성을 그대로 발전시키면 결국 그 종착역에는 &i가 있죠. 하지만 유리장이는 내가 보는 길을 따라가지 않을 게 뻔하고, 그게 뻔하다면 기대가 안 되는 게 보통인데,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대가 돼요. 뭔가 보여줄 그림이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지금 이대로도 흥미로운 트랙인 Easy가 3번에 자리잡고 있어서인 것 같긴 하지만… 뭐 그 이상이 필요한가요? 그리고 그렇기에, 내가 유리장이에게 했던 악담은 반드시 물러야겠죠.
이 아가씨는 뭔가 싱글 내놓을 때는 와 이런 노래도 하네, 이번에는 이런 방향으로 가 볼 생각인가? 재미있네…. 싶은데, 왜 앨범만 내놓으면 전에 하던 거 그대로지?
저번 앨범에서 Help Me Mama 잘라 먹은 걸로 시작해서 뭔가 개성 있는 트랙들은 전부 앨범에는 빼버리고 그냥 뻔한 변주와 흥미롭지 않은 자기복제로 앨범을 채운다. 그게 아니라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재편곡이나 오더 헛짓거리로 노래를 묻어 버려.
저 개성 있는 싱글들 반응이나 성적이 나빴냐면 그런 것도 아냐. 이번 앨범에서도, Sex & Stardust랑 the Dark은 어디다 떼어 먹은 건데? 아니 ㅅㅂ 메인스트리머였던 시절 노래 제외하면 스포티파이 최대 재생수가 저 두 싱글인데, 그걸 왜 이번 앨범에 안 넣어? Tin Cups은 넣었잖아.
아, 그게 주목을 받아봐야 메인스트리머 시절 노래보다 못하니 하던 노래 계속 해야겠다고?
아니, 하… 진짜….
그거 듣고 있는 애들이 네 신곡을 듣겠냐? 지금 너 먹여 살려주는 건 그 10년전 노래를 아직까지 퍼먹고 있는 애들이겠지만, 걔네는 네 신곡 안 찾아 듣는다니까?
하, ㅅㅂ 이러면 S&S랑 the Dark은 싱글을 사야하잖아. 아니 빼는 김에 baby don’t도 빼지? 그건 왜 넣니? 그리고 벌크 트랙에서 랩 헛짓거리 하는 건 대체 뭐임? 아니 ㅅㅂ 4년 동안 연구한 건 다 폐기하고 랩이나 하고 자빠져 있는 건 대체 뭐냐고? 앨범을 일관성 있게라도 만들던가!